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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자신의 전문성을 고급으로 발휘하는 매력적인 사람을 위하여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자신의 전문성을 고급으로 발휘하는 매력적인 사람을 위하여

 

 

 

  지난 일요일에는 그 추위 속에 돌아다니며 "황우석 교수님, 힘내십시오. 당신은 온 국민의 희망입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차가운 바람에 휘날리는 것도 보았고,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칼국수 식당에서 '전국노래자랑', 화순군 편도 좀 보았습니다. 화순은, 워낙, 마이크만 갖다대면 그대로 수준 높은 창이 흘러나온다는 남도이기도 하지만, 그 날 아마추어 가수들은 초대가수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만큼이었습니다.

 

  식당을 나오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을 특기와 취미도 갖춘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싶다.' 물론, '우리 민족은 노래와 춤을 저처럼 좋아한다'는 생각도 했고, 노래방 문화는 우리가 최고일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팝송을 잘 부르는 아이들이 되도록 가르치자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보고 "얘들아, 이제 유행가를 잘 부르도록 하자"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지난 12월 1일, 베이징 TV(BTV) 인기 토크쇼 프로그램인 「TV는 당신과 함께」에 출연한 김하중 주중 한국대사는, 기타를 치며 미국의 팝 가수 '페티 페이지'의 노래 'Have I Told you lately that I love you'란 노래를 영어와 한국어, 중국어로 연속해서 불렀는데, 김 대사는 대화의 다양성과 솔직함, 유창한 중국어 실력 등으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30개국 대사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대사'로 뽑혀 맨 먼저 방송되었답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우리 고구려의 찬란한 옛 역사가 자기네 변방국가의 역사라고 주장하기 위한 '동북공정'이란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이 이미 그 나라에서 건너온 것들이기도 한 나라이고, 긍정하기가 싫지만 그 국력으로 세계의 중심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사가 어떻게 해야 그들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시종일관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으면 좋겠습니까, 아니면 김 대사처럼 상대방이 호감을 느끼는 이미지부터 주는 것이 더 원활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그들과의 외교관계에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BTV는 지난 11월 30일에 진타이(金臺)예술관에서 녹화를 마친 30개국 대사와 문화·예술계 인사를 초청해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대사에게 '최고 인기상'을 수여했답니다.

 

  사실은, 주중 한국대사만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지난 11월 11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미 우호의 밤' 행사에서 멋진 드럼 솜씨를 과시했는데, 12월 2일에는 청담동 재즈바 '원스 인 어 블루 문(once in a blue moon)'에서 관객과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밴드와 호흡을 맞춰 펑키 불루스와 재즈곡들을 멋지게 연주했다고 합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 재즈바 사장이 나와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대사께서는 재즈 드러머가 직업이고, 낮에는 아르바이트로 대사관 일을 한답니다." 모두들 웃음과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겠지요. 기자는 대사의 첫인상에 대하여 이웃집 아저씨 같았고, 청소년 시절에는 모범생이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위의 주중 한국대사 이야기와 함께 조선일보 검색에서 인용함).

 

  저는 위에서 이야기한 대사들이 앞으로 업무를 어떻게 수행할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우리 아이들은 어차피 우리 세대보다는 더욱 세계화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므로, 무엇인가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은 물론이고, 게다가 이 세상 어느 곳, 누구 앞에서도 경직되지 않을 사람, 큰일을 담당하면서도 저처럼 여유를 가지고 멋있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앞두면 그만 경직되는 사람, 문학이나 예술, 체육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취미도 없이 그냥 무턱대고 일만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보다 큰일을 담당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내년 봄에 정년퇴임을 하게 된 어느 교수는, 교육부에서 근무할 때 우리나라 교육과정사상 가장 뚜렷한 업적을 남긴 분으로, "일하는 것을 노는 것처럼, 노는 것을 일하는 것처럼 지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한 가지 특기와 적성, 취미를 가꾸어 가는 사람이 되게 합시다. 저학년일수록, 예를 들어 부모가 좋아하는 어떤 종목 한 가지만 물고늘어지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것, 그 아이의 적성에 맞는 것, 그 아이가 흥미와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발견하는 일부터 합시다.

  나중에 세상에 나타나면, 그 특기와 적성, 취미로 주위 사람들이 호감을 갖게 하는 사람을 만들어 봅시다. 외교관이 되든, 정치가, 과학자, 기업가, 의사, 판·검사가 되든, 자신이 지닌 전문성을 훨씬 고급으로 발휘할 수 있는 멋진 사람, 매력적인 사람이 되게 합시다.

 

  그러므로 우리 학교가 얄팍한 지식을 많이 외우는 데 치중하여 허약한 아이를 기르기보다는, 여러 교과와 특별활동을 제대로 잘 가르치고, 특기·적성 교육도 다양하게 전개하여 우리 아이들이 기초·기본을 잘 익히고 배우고싶은 것을 마음대로 선택하여 배울 수 있는 그런 학교가 되어 우리의 자랑스런 이 아이들이 장차 세계 무대에서 무한한 경쟁력을 지닌 매력 있는 한국인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게 해줍시다.

 

 

2005년 1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