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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1

독서교육에 대하여 (2)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초등학교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독서교육에 대하여 ⑵

 

 

 

지난 여름방학 때의 우리 학교 도서실은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여름독서교실' 운영계획을 참하게 만들어 제출했더니 우리 용인교육청 관내 114개 초·중학교 중 우수학교 3개교의 하나로 뽑혀 45만원의 지원금도 받았고, 어머님들께서 자녀와 함께 찾아오셔서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이 한가롭고 정겨웠습니다. 그래서 방학이 끝났을 때, 수료증과 우수상(몇 명만 해당)을 주고 어머님 몇 분에게도 감사장을 드렸습니다.


책은 많이 읽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엔 '평생교육'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은데, 지식사회가 되어서인지 어떤 직장에 근무하든 나날이 새로운 지식·정보를 얻지 않고 그냥 살아가면 재미도 없지만 우선 그 직장에서 배겨낼 재주가 없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킨다는 것을 크게 이야기하면 결국 <책을 보는 사람> <새로운 정보를 찾는 사람>을 만드는 거나 다름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공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공부도 옛날 우리가 학교 다닐 때와 달라졌습니다. 그때야 교과서말고는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었지만, 교보문고나 대형서점에 한번 가보십시오. 읽을 만한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책에 영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런 서점에 한번 데려다 놓으면 당장 '세상에, 오늘 우리나라 서점이 이와 같구나!' 하고 감탄하거나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지?' 하고 현재의 삭막한 삶을 되돌아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가 명색이 공부를 가르치는 대상으로서의 아이들에게야 독서의 필요성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옛날 우리가 공부할 때처럼, 교과서에 나오는 「나무꾼과 선녀」라는 한 단원을 성경이나 불경처럼 일주일 내내 읽고 앉아 있어라 하면, 아이들로서는 한심한 노릇 아니겠습니까!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보이는데도 "교과서에 나오는 거나 읽지 그건 뭐 하려고!" 하신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가르치는 교사나 학부모들은 어떤 대학에서 논술고사 문제를 이른바 '교과통합형'으로 출제하겠다고 하면, 당장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으로 '왈가왈부'에 끼여들게 되겠지요.


이 편지를 읽고 "그래, 좋다. 내게 돈이 없나, 뭐가 없나." 하시고 자녀에게 전집 수십 권이나 수백 권을 당장 사주시고 "너도 책 좀 많이 읽어라!" 하신다면 그건 참으로 큰일입니다. 전번 직장에서 있었던 일인데, 한번은 점심을 먹고 들어가다가 골목길 누구네 집 앞 쓰레기 더미에서 아동도서 수십 권을 주운 적이 있습니다. 살펴보았더니 한 장도 넘기지 않은 새책이어서 사무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더럽다 생각 마시고 자녀에게 주세요." 했더니, "교과서를 만드는 편수관께서 주시는 책이므로 헌책이면 어떻겠어요." 하며 고맙게 받아갔습니다. 지난 가을에는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쓰레기 분리 수거일에 역시 아동도서 100권이 새책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주어서 우리 학교 도서실에 갖다 놓았습니다.


이렇습니다. 아이들에게 전집 수십 권을 사주시면 책을 읽을 마음이 없어지게 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님께서는 한꺼번에 수십 권을 사다놓으시고 한 권 한 권 차례로 읽으시는 편입니까? 그렇게 하시는 분도 더러는 계시겠지요. 저도 읽고 싶은 책을 한꺼번에 몇 권씩 구입하여 책장 안에 넣어놓고 먼저 읽고싶은 책부터 가려 읽고 있는데, 서점에 간 것처럼 책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20∼30권이라야 이야기가 되겠지요.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 읽을 수 있는 어른의 경우겠지요.


초등학생의 경우, 만화가 아니라면 한번에 고작 한두 권이 제일 좋을 것입니다. 두 권도 특수한 경우이면 더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번거롭다면 책을 사러 가는 즐거움이나 그 책을 다 읽고 또 새책을 사게 되었다는 기쁨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저는 어떤 책에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서점에서 자녀에게 책을 고르게 하거나 직접 골라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따뜻해 보이고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습니다. 지난 가을 모처럼 '교보문고'에 갔을 때도 그런 모습을 보고 왔는데, 저는 이 나이에도 그 모습이 부럽습니다. '넌 참 부모를 잘 만났구나' 하며 그 아이를 바라보게 되고, '보기에 참 좋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아이들 다 키웠는데 참 좋으시겠어요.' 하며 그 어머니를 바라봅니다. 그럴 때 그 어머니는 내가 부러워하며 쳐다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책갈피에 얼굴을 묻고 있으니 더욱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성복동에서 제일 가까운 서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보문고' 같은 곳은 겨울방학에 가셔도 좋을 것입니다. 이번 주말에나 언제쯤 아이와 함께 그 서점에라도 가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2005년 1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