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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그리운『숭례문』(Ⅱ) : 단상(斷想)

by 답설재 2008. 2. 23.
 

○ 정부중앙청사 18층에서 교육과정․교과서 일을 할 때 경복궁 안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었다. ‘과감하게’ 결정되고 신속하게 추진되었다. 일시에 사라져가는 걸 지켜보며 ‘나중에 일본인들이 “우리는 조선을 침략한 사실이 없다.”고 하면 무엇으로 증거를 대려고 없애버리나?’ 싶었다. 일본인들은 이미 학생들에게 조선으로 ‘진출(進出)’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절대로 ‘침략(侵略)’했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문부과학성은 그들의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그 흔적을 없애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만은 철저히 가르치며 평화를 부르짖는다(이 블로그 ‘기고’란「요코 이야기」(2007년 2월 경기신문 게재) 참조).

○ 다음과 같이 썼던 것도 생각난다. “국민교육헌장을 교과서에 싣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매우 섭섭했다. ‘뭐든 다 없애거나 부수고 마는구나.’ ‘이런 식으로 없애는 데만 열중하다 보면 살아남는 것이 어떤 것일까?’ ‘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냥 쓰고 정 그냥 둘 수 없으면 고쳐 쓰면 안 되나’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어떤 나라에서 오래된 것을 지금도 잘 지키고 있는 사례를 전해 들으면 그것이 그렇게 부럽기도 했다. 웬만한 의식을 행할 때는 애국가를 부르지 않게 된 지도 오래 되었다. 애국가 연주에 맞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므로 그 연주로 애국가 제창을 대신할 수도 있다지만, 간편해서 좋다는 느낌과 함께 때로는 ‘이제 모든 걸 다 박살내고 마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저기서 구구각색인 의식을 치르지만, 애국가 연주에 맞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다 보니 ‘국기에 대한 경례’ 순서를 생략하기도 해서 ‘그렇다면 우리나라, 우리 국민은 도대체 무얼 추구하고 무얼 지향하며 사는가.’ 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들었다.”(졸저,2005,『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아침나라,168쪽).

○ 2008년 2월 10일 밤, 우리는 이튿날 새벽까지 국보 1호의 전소(全燒) 광경을 5시간 동안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연기만 보였고 소방차들이 진화작업에 나섰으므로 ‘곧 끄겠지, 꺼지겠지.’ 했지만 결국은 그 목조건물이 푹석푹석 무너지는 걸 다 지켜보아야 했다. 수많은 소방차들이 물을 뿌려대고 고위관리들이 모여들었는데도 그렇게 되었다.

그건 속수무책(束手無策)도 아니었다. ‘속수(束手)’란 ‘손을 묶음’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음’의 뜻이기 때문이다. 구경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 NHK 등 일본 방송들은 남대문(숭례문)이 화염에 휩싸인 장면을 현장 리포트로 전했고, 교토통신은 남대문은 국보 1호인데 소화기 이외의 소방 설비가 없고, 심야에서 아침까지는 경비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조선일보,2008.2.12.2).

일본인들은 비공식적으로는 박수를 치며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들은 조선총독부 건물이 사라질 때도 그랬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들의 야만적인 침략행위의 증거를 우리 스스로 없애버렸으니까. 숭례문은 또한 우리가 그들보다 우월했던 증거의 하나였으니까. 복원된 숭례문을 보고는 “에이, 모조품이잖아.” 비하할 수 있을 테니까.

○ 정부는 2월 11일 불타 무너진 숭례문을 최대한 빨리 원형대로 복원하고, 주요문화재에 대한 화재 방지와 진압 대책을 전면적으로 점검․보완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조선일보,2008.2.12.2). 李 당선자 “사회혼란 걱정스러워”, 숭례문 화재현장 찾아… 손학규 대표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조선일보,2008.2.12.10). 유홍준 “소방차 왔는데 전소라니”, 방재청 “손실 없게 불 끄라고 해서”(매일경제,2008.2.12.4). 소방방재청 “문화재청 허가 늦어 진압 지연”, 문화재청 “불난 뒤 40분 지나서 통보받아”, 중구청 “양측 의사결정 지연 화재 커져”(문화일보,2008.2.12.3). 李 당선인 “취임 뒤 국민성금으로 숭례문 복원”(문화일보,2008.2.12.1).

그 진의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책임 있는 사람들이나 고위층 인사들도 결국은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 다른 점은, 그들이 하는 말은 곧 뉴스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보도에 열을 올리는 언론을 보며 야단스럽다는 느낌을 갖는다. 우리의 말을 그들이 듣고 그들의 결정을 우리가 들었으면 좋겠다.

○ 숭례문 화재보험가액은 고작 9500만원이었으며, 그것은 문화재 고려 없이 목조건물로만 계산했기 때문이었다(조선일보,2008.2.12.2).‘숭례문 CCTV’는 모두 4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계단이나 2층 누각은 비추지도 않고 엉뚱한 곳만 감시했다(조선일보,2008.2.12.6). “조명만 화려했지 관리 엉터리… 어처구니없다”(매일경제,2008.2.12.39). 스프링클러․회재감지기․경보기․경비원… 숭례문엔 아무것도 없었다(문화일보,2008.2.12.2).

많다는 건 아니지만 불국사 보험가는 150억 원이라고 한다. 우리는 야간의 숭례문을 바라보며 조명이 아름다운 그 모습을 즐겼다. 미리 알았으면 “조명만 화려하다!”고 야단쳤을 텐데……. 기자들은 미리 알았을까. 우리는 그 숭례문을, 화재보험가액을 정한 그 사람들처럼 단순한 건축물로만 알았고, 국보 1호인 줄은 몰랐던 것 아닐까. 숭례문 화재보험가액을 정한 그 사람들도 바보들은 아니었을 테니까. “숭례문이 국보 1호인 줄 몰랐던 사람이 어디 있나!”라고 반문한다면, “교과서를 볼 때, 시험 볼 때, 퀴즈 풀 때나 알았지 ‘마음으로’ 알았던 건 아니었다.”고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불에 타는 걸 보면서 비로소 그걸 알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이제 와서 ‘우리나라의 상징’이니 ‘우리의 가슴’이니 하게 된 건 아닐까. 엉뚱한 생각인지, 때늦은 후회인지는 몰라도 숭례문 주변의 즐비한 건물들도 그처럼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지는 않을 것이므로 차라리 그들 중 누구에게 “이것도 좀 지켜 달라”고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 우리는 일부러도 없애고 불에 태워서도 없앤다. 이래저래 다 없애버린다. 일본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먼지까지도 모은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교과서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제대로 된 ‘교과서박물관’ 하나 없지만 저들은 우리의 교과서까지 다 모으고 있다. 그것이 ‘힘’이다. 우리는 나중에 우리의 옛 교과서를 보고 싶을 때 일본에 가서 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교육감보다 교과서박물관장이나 한번 해보면 아무 소원이 없겠다.

○ 일본은 1월 26일이 ‘문화재 화재 방지의 날’이다. 1949년 1월 26일 나라(奈良) 고구려 담징의 호류지(法隆寺) 금당에서 일어난 불로 세계적 예술품인 금당벽화가 불에 타 사라져 버린 날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뜻에서 지정됐다. 이듬해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됐고, 매년 전국적인 소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에선 1950년 교토의 금각사(金閣寺) 화재 사건 이후 국보 건축물이 화재로 소실된 경우가 없다. 60년 전 쓰라린 경험을 교훈으로 ‘문화재 보호 선진국’이 된 것이다(조선일보,2008.2.12.8).

우리도 그런 날을 정하면 좋겠다. 기념식이나 하고 마는 날이 되지 않았으면 더 좋겠다. 기념식만 하고 말면 공무원의 일거리가 늘어나 그걸로 봉급 받게 된 사람들만 좋아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