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9 폭설을 믿어주기 바란다 오늘 눈이 왔다.많이 왔다.예보로는 아침나절 잠시 0.5cm쯤 내린다고 했다. 0.5cm라니, 혹 내리지 않으면 슬쩍 빠지려는 것이었겠지?그래서 그러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잠시가 아니라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2시까지 잠깐씩 두어 번 쉬고 그냥 펑펑 퍼부었다.분명히 그랬다. 그랬는데, 그 눈이 저녁나절에 모조리 다 녹았고 응달이고 어디고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4시쯤 광명 어느 학교 교장인 W가 전화를 해서 이곳엔 눈이 엄청 왔다니까 "정말요?" 하고 곧 딴 얘기로 넘어갔다.까마득한 선배 얘기여서 어쩔 수 없다는 투였다.그 눈을 본 사람도 나밖에 없다.점심때 어디서 사람 소리가 좀 났지만 증거를 삼겠다고 그 사람을 찾아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세상 일이 거의 다 이렇다.오늘의 폭설(暴雪), 이 사진 .. 2025. 3. 29. 어떻게 하지? 박새? 곤줄박이?먹이 찾기가 어려웠겠지.눈을 쓸어낸 출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밤새 자꾸 생각났다.지금쯤 길 건너 산으로 갔을까? 영하 14도라지만 햇살은 따스하니까 눈이 녹을까? 2025. 2. 8. 소한(小寒)에 내린 눈 소한 날 눈이 많이 내렸다.지난 초겨울의 폭설처럼 볼 만하진 않고 여기로는 세 번째여서 '또 내리는구나' 싶었다. 눈발 속으로 구세군의 모습이 떠올랐다.이 동네 중심지에 나와 있던 구세군은 엊그제 봤더니 이미 철수해 버려서 그 자리가 썰렁했다.그들이 추위를 지켜야 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아직 추운데 벌써 가버렸나 싶었다. 이 눈 내리고 나면 며칠간 많이 춥겠다고 했다.'소대한 지나면 얼어 죽을 사람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소한이 춥다는 속담은 더 많다.'춥지 않은 소한 없고 푹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에 집 나간 사람 찾지 말라.'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 '소한이 대한 집에 몸 녹이러 간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 그렇긴 하지만 이 고비 지나고 나면 좀 낫겠지.그러다가 마침.. 2025. 1. 5. 거기도 눈이 왔습니까? 일전에 L 시인이 올해는 첫눈이 자꾸 내린다고 했습니다. 오늘 또 눈이 내렸습니다. 해가 중천에 올라온 것이 눈구름의 배경처럼 다 보이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눈은 줄곧 내렸고, 한때 펑펑 퍼부어 오늘 오기로 한 친구에게 점심약속을 미루자고 전화를 할까, 하다가 조금만 조금만 하는 사이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눈은 그쳤는데 오늘 밤에 또 내린다고 했습니다. 어딘가 폭설이 내릴 거라는 예보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젊었던 시절의 일들이 자주 떠오릅니다. 내 친구는 점심을 먹으며 그게 일과가 되었다고 이야기해 놓고 조금 있다가 또 그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누구나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꾸하면서도 애써서 노년의 의미를 찾은 시몬 드 보부아르를 생각했습니다. 그런 회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같고 그.. 2023. 12. 24. 三月에 내리는 눈 저 허름한 비닐창으로 폭설이 내리는 걸 보며 식사를 했습니다. 팔당이라는 곳이었습니다. 폭설이 내리는데도 사람들은 걱정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식사가 더 즐거운 것 같았습니다. 비가 진눈깨비로 바뀌었고 금방 또 폭설이 내리는 것이었는데 지상의 기온이 영상이어서 내리는대로 거의 다 녹았습니다. 잠깐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金春洙)이 생각났지만 먹는데 정신이 팔려 곧 잊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눈은커녕 쨍쨍한 곳이 한참 동안 이어졌는데 우리 동네에 들어오자 또 눈이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싸락눈이어서 차창에 부딪친 눈이 작은 유리구슬처럼 폴짝폴짝 뛰었습니다. 이번에는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가 생각났습니다(『徐廷柱詩選』(1974, 민음사 세계시인선 ⑫), 111쪽). 생각만 했지 그 얘기를 하진 않았.. 2019. 3. 23. 정호승 「폭설」 폭 설 정호승 폭설이 내린 날 칼 한 자루를 들고 화엄사 대웅전으로 들어가 나를 찾는다 어릴 때 내가 만든 눈사람처럼 부처님이 졸다가 빙긋이 웃으신다 나는 결국 칼을 내려놓고 운다 칼이 썩을 때까지 칼의 뿌리까지 썩을 때까지 썩은 칼의 뿌리에 흰 눈이 덮일 때까지 엎드려 운다 출처 : 정호승, 『밥값』(창비, 2010), p.88(『현대문학』 2012년 4월호, 「텍스트에 포개 놓은 사진」에서) 그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얼마나 후련하겠습니까. 그 아름다운 분도 기특해하시고말고겠지요…… 울다가 가렴. 울지 않고 어떻게 갈 수 있겠니. 그래봤자 그 칼의 뿌리가 썩어 가서, 썩은 그 곳에 오늘 같은 폭설이 덮일 때까지인데, 잠깐일 텐데 그렇게 좀 울면서 너를 찾으렴. 그러셨을까요? 해마다의 이런 폭설을 겪.. 2012. 12. 5. 金春洙 「千里香」 千里香 꽃망울 하나가 가라앉는다. 얼음장을 깨고 깊이 깊이 가라앉는다. 어둠이 물살을 그 쪽으로 몰아붙인다. 섣달에 紅疫처럼 돋아난 꽃망울, 저녁에는 함박눈이 내린다. 마을을 지나 잡목림 너머 왔다 간 사람은 아무 데도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다. 『金春洙詩選2 處容以後』(민음사 오늘의 시인 총서, 1982), 76쪽. 봄입니다. 그걸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부정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난 2월 둘째 주 주말에만 해도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린 곳이 많았습니다. 동해안에는 백몇십 년 만에 처음 그렇게 많은 눈이 내려서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그 당시 불친 "강변 이야기"에 실린 사진입니다. 부치지 못했던 오랜 추억을 기억하던 편지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그분은 이 사진 아래에 오석환의 시 .. 2011. 3. 6. 「대설특보 발효 중!」 「대설특보 발효 중!」 오전에 안병영 전 부총리겸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블로그 ‘현강재’에 가보았더니 「눈 오는 날 현강재」라는 제목으로 사진 몇 장이 실려 있었다. ‘고성엔 지금 눈이 오는구나. 여긴 멀쩡한데……’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다녀온 금요일 저녁이 참 무료해.. 2011. 2. 11.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Ⅱ B.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김재경 옮김, 혜원출판사 2007 혹한과 폭설이 이어지다가 모처럼 포근한 토요일 낮입니다. 오후에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우리 학교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 선생님 한 분의 결혼식 주례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또 눈이 옵니다. 지난 3일 일요일 밤에는 눈이 참 많이도 왔습니다. 그 눈은 월요일에도 그칠 줄 모르고 내려 그날 출근을 하려던 우리 학교 교직원들 중에는 한 곳에 서 있는 버스 안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다가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는 기간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기상 관측사상 제일 많이 내렸기 때문에 칠십 몇 년 만에 가장 많이 내렸다고 하더니 이어서 백 몇 년 만이라고도 했습니다. 뉴스에서는 8일에도 아직 전철이 미어터질 지경이어서 .. 2010. 1. 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