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수관6

지루한 수업 저 유명한 시인 이상입니다. 화가 구본웅이 그렸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2013.10.29~2014.3.30)에서 봤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에 옛 편수국의 구본웅 미술 편수관의 작품도 소개되었습니다. 「친구의 초상」. 이상(李箱)이 모델이었다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이용기 선생님은 뜻도 모를 오감도(烏瞰圖)를 자꾸 읽어 주셨습니다. 벌써 50년이 흘러갔습니다. 지금도 우리들 곁을 오락가락하시며 그 시를 읽어 주시던 선생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선생님! 그 이상 시인의 초상화를 문교부 구본웅 미술 편수관께서 그.. 2022. 10. 6.
"자랑스러운 편수인상" 수상 소회 "자랑스러운 편수인상" 수상 소회 1986년, 초등 교사였을 때 편수를 돕기 시작해서 1989년 12월, 파견근무를 하며 5차 교육과정 초등학교 사회, 사회과탐구 편찬 업무에 참여했고 1993년 6월에는 편수국 교육연구사가 되었습니다. 2년간의 시·도별 사회과탐구 개발은 연구진·집필진·삽화진.. 2018. 4. 10.
'송어 5중주'? '숭어 5중주'? 어느 게 나을까? 초등학교 교과서에 이 곡이 수록된 걸 보고 전에 썼던 글이 생각나서 몇 자 수정하여 옮겼습니다. 딸아이 입에서 '편수자료' 이야기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그건 교과서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일부 학자, 교원들이 열람하는 자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생이 교과서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그 곡이 "송어인지, 송어 또는 숭어인지", 즉 "송어만 옳은 건지, 송어가 옳지만 예전처럼 숭어라도 해도 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고 했을 때, 얼핏 어디서 그 기사를 본 것 같아서 "숭어였는데 송어로 고쳤지, 아마?" 했더니 그 정도는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그 대학생의 지도교수가 편수자료라는 게 있다면서 거기에서 둘 다 인정하고 있다는 쪽으로 단언(斷言)하는데 대해 그 학생은 아무래도 그게 의심스러워서 확실.. 2015. 6. 23.
최현배 선생의 손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손자를 만났습니다. 지난 2월 25일 오후 6시30분, 프레지던트 호텔 31층 모차르트홀에서 열린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 2011년 정기총회에서였습니다. 전직 편수관(編修官)들의 모임인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에서 외솔 최현배 선생의 손자를 초청한 것입니다. 편수관이란 장학관, 교육연구관, 교육연구사, 장학사처럼 전문직의 직렬 중 한 가지이지만, 지금은 그런 직렬을 가진 전문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조직에서 편수국이 사라졌으므로 편수관들도 없어진 것입니다. 편수관들은 '교육과정(敎育課程)' 즉 초·중·고등학교와 유치원, 특수학교 교육을 위한 학교교육의 교과별 목표와 지도내용, 지도방법, 평가방법 등을 정하고 관리하는 일, 교과서를 편찬하고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그렇.. 2011. 3. 18.
인디언 편수관 지난 4월 23일「빛나는 편집인」이란 제목으로 미래엔컬쳐그룹 검정교과서팀 국어과 황은주 과장의 글「긴 시간 속에서 얻어낸 값진 열매」라는 글을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필자가 교육부에서 교과서 편찬업무에 골몰하던 때의 일을 적은 글이 있어(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편수의 뒤안길』제6집, 2005.1.) 그 원고를 탑재합니다. 다 추억거리일 뿐이지만, 사실은 그로써 몸까지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인디언 편수관 □ 혁명적인 제5차 사회과 교과서 지금도 눈에 선하지만 1980년대 후반기의 사회과학편수관실의 위치는 현 교육과정정책과 북쪽 편이었다. 당시 사회과학편수관은 한명희(후에 편수국장 역임) 선생이었고, 그때 중등 지리과와 초등 사회과 편수를 맡은 김용만 편수관(당시 교육연구관)은 훗날 필자처럼 일요일에도 곧잘.. 2009. 4. 28.
교과서에 대한 인식전환의 필요성 1980년대에 몇 년간 교육부 편수업무를 돕던 나는, 1993년 6월에 편수국 교육연구사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편수국은 국장아래에 편수관리를 맡은 서기관실, 교육과정담당관실, 인문과학편수관실, 사회과학편수관실, 자연과학편수관실로 나뉘어, ‘편수관’으로 불리는 6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지금 되돌아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나는 몇 달간 교육과정담당관실에서 초등학교와 유치원 교육과정 일을 하다가 곧 사회과학편수관실로 옮겨 초등학교 사회과 편수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어떻게 해냈는지는 지금은 되돌아보기조차 무서울 정도여서 다시 그렇게 하라고 하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겠지만 사회과 편수관으로서의 자부심, 책무성은 가히 하늘을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그렇게 생활하던 19.. 2008.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