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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적막5

이곳에 오면 이를 데 없이 적막하다. 그 적막을 참고, 지난날들을 그리워한다. 그 시간이 좋다. 이제 다 괜찮아지고 있다. 2023. 4. 23.
노인의 시간 새벽에 쓸데없이 일찍 잠이 깨어 오랫동안 뒤척였다. 그 시간이 꽤 오래 흘러 마침내 일어날 수 있었다(잠시, 왜 눈을 떴느냐는, 늙었으면 죽어야지 왜 살아 있느냐는 구박을 받더라는 씁쓸한 우스개가 생각났다). 어제저녁에는 고요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었는데 괜히 '적막하구나...' '적막하구나...' 하며 두어 시간이나 헛된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잠들 수 있었다. 오늘은 또 그렇게 해서 일어난 새벽부터 이 저녁까지 뭘 했는지 뚜렷한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또 저녁이 되었고 두어 시간 후에는 구처 없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이 저녁에도 책을 읽으면 좋을 텐데 나는 적막하다고, 한탄할 일도 아닌 걸 가지고 한탄처럼 생각하며 어정대고 있다. TV만 켜놓지 않는다면 나의 세상은 사실은 늘 이렇게 적막할 수밖에 .. 2023. 3. 23.
혼자인 날 대화할 일이 전혀 없으니까 적막했습니다. 하루가 이렇고, 이런 하루하루가 이어지면 나의 세상은 어떤 것이 될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잠시 밖에 나갈 일이 생겼습니다. 이쪽으로 걸어오던 한 여인이 하필이면 바로 옆을 지나면서 큰소리로 말합니다. "아니야!" 깜짝 놀랐는데, 다행히(!), 그녀는 그대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귀에 걸린 이어폰이 보였습니다. "아니야!" 그게 내가 들은 한 마디 '사람의 말'이 된 날입니다. '이런 날이 있다니…….'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7. 10. 2.
토요일 저녁 토요일 저녁 낮에 백화점에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니까,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거의 매일 아침 아이들 일기장 검사하던 생각이 납니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 먹고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중략)… 저녁을 먹고 일기를 쓰고 누워잤습니다." 종일 한 .. 2013. 2. 24.
이 적막(寂寞) '적막'이 고요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것이라면,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정말이지 참 적막하기 짝이 없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적막한 곳은 처음입니다. 비가 올 기미가 있을 때면 멀리 추풍령을 오르내리는 기차 소리가 가물가물하게 들려오던,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 고향집보다도 더 적막한 곳입니다. 경춘선 열차를 내려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조금만 기다리면 이내 버스가 오고, 10여 분이면 도착해서 한 5분만에 걸어올라올 수 있는 아파트인데도 이렇게나 적막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텅 빈 아파트 단지에 아내와 나만 사는 것 같습니다. 내려다보이는 정원에 보안등이 켜져 있는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게 분명한데도 서럽다 싶을 만큼 적막합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곳으로 이사온 내내 그렇습니다. ♣ 잘 .. 2012.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