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7 버리기 - 책 버리기 책을 버리며 산다. 전에는 한꺼번에 수백 권씩이었는데 그간 많이 줄어들어 지금은 조금씩 조금씩 버린다. 누가 볼까 봐 주변을 살피지만 버리고 나면 개운하다. 책 몇 권을 버렸는데 매번 무슨 큰일을 치른 느낌이 든다. 책을 모으며 살던 때가 있었다. 늘어난 책을 보며 흐뭇해했다. 사람들이 보고 놀라면 자랑스러웠지만 혼자서도 그랬다. 삶의 보람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그러다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버리는 건 처음이 어렵지 나중엔 어려울 것도 없었다. 자서전 버리기는 예외다. 자서전은 책 중에서도 시원찮은 것들인데도 버리고 나면 개운하지 않다. 본인이 "지금도 갖고 있겠지요?" 할까 봐 켕긴다. 아직은 묻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긴 하다. 죽기 전까지 그렇게 물어오는 사례가 없어야 하는데 모르겠다. 극히 한정된 .. 2024. 12. 5.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상)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상)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2021 많은 책들이 오랫동안 남아 읽히는 것 같아도 곧장 쓰레기가 되고 사라지는 책은 그 몇십 몇백 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웬만한 책은 다 그렇지만 특히 자서전은 대부분 '거의 바로' 쓰레기가 되는 것 같다.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고 군사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교사가 되었는데, 학교에서는 자료실 관리, 도서실 관리, 서무와 경리(그때는 행정실이 없었지) 등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들은 모두 나에게 맡겼다. 덕분에 나는 일요일도 없이 학교에 살다시피 했다.책은 좋은 것이어서 어느 일요일 오전, 오늘은 도서실 정리나 해볼까 싶어 이 책 저 책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이승만 대통령 자서전(평전이었던가?)을 발견했다. 표지를 넘기자.. 2024. 7. 30. 그 시절 그 시절에는 세월이 느릿느릿 무료하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신문을 읽지 않았고, 라디오와 전화와 영화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며, 삶은 말없이 진지하게 띄엄띄엄 이어져 나갔다. 사람들은 저마다 폐쇄된 세계를 이루었고, 집들은 모두 빗장을 걸어 잠가 두었다. 집은 어른들은 날마다 늙어 갔다. 그들은 남들이 들을까 봐 조용조용 얘기하며 돌아다녔고, 남몰래 말다툼을 하며, 소리 없이 병들어 죽었다. 그러면 시체를 내오려고 문이 열렸으며, 네 벽이 잠깐 동안 비밀을 드러냈다. 그러나 문은 곧 다시 닫혔고, 삶은 다시금 소리 없이 이어졌다. "영혼의 자서전"(Report to Greco, 니코스 카잔차키스 ㊤)의 그 시절. 지나간 날은 어쩔 수 없다. 그 시절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에도 있었고, 세상 그 어디.. 2024. 7. 15. 재미있는 사람《프랭클린》 로저 버어링게임 《프랭클린》 김면오 역, 창명사 1974 장명희 선생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다가 프랭클린 자서전 얘기가 나와서 내게도 책이 있나 봤더니 자그마한 전기 한 권이 보였습니다. 귀퉁이에 1975년 10월 17일, 부산, 200이라고 메모되어 있습니다. 2,000을 잘못 썼나 싶어서 판권란을 열어봤더니 정가가 240원이었습니다. 그 가을, 전국 현장교육연구대회 발표 및 시상식이 열렸는데 나는 "국민학교 방학생활 개선방안 연구"로 푸른기장증 1등급을 받았습니다. 한 해 전 1974년에는 "역할 부여를 통한 수용적 학급 분위기 조성"이라는 주제의 연구보고서로 난생처음 참여한 그 대회에서 전국 1등급을 받았습니다. 그 보고서를 쓰면서 만난 교육연구원 이광욱 연구사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어서 .. 2021. 12. 4. 沈復 《浮生六記》 沈復 《浮生六記》 흐르는 인생의 찬가 池榮在 역, 을유문화사 1 이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뭘 읽었는지 기억도 없어서 처음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가진 이 책(1984년, 19판)은 세로쓰기여서 읽기에 힘이 들었습니다. 심복이란 학자가 '부생육기(浮生六記)―흐르는 인생의 찬가'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얘기를 '사랑의 기쁨' '한가롭게 멋지게' '슬픈 운명' '산 넘고 물 건너' '유구국 기행' '양생과 소요' 등 여섯 편으로 쓴 '아름다운 자서전'입니다. 2 '사랑의 기쁨'은 아내 진운(陳芸)에 대한 사랑의 찬가입니다. 앞니 두 개가 약간 내다보이는 점은 관상적으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찰싹 달라붙는 듯한 태도는 사람의 넋을 송두리째 빼앗았다.(13) 옛사람의 이야기인데도 그들의 애틋한 사.. 2019. 11. 23.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 A Man without a Country》 커트 보니것 Kurt Vonnegut 《나라 없는 사람 A Man without a Country》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2007 1 가끔 나도 다시 책을 내볼까 생각하지만 이런 책을 보면 금방 절망감을 느낀다. 생각조차 집어치워야 한다는 걸 또 실감한다. 이 책 저 책 읽고 싶은 책을 마구잡이로 읽어대는 이 꼴이 그나마 다행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이런 작가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절망스럽다. 그의 농담이란 것이 놀랍다. 이렇게 쓰지 못하겠다면 무슨 얘기를 쓰겠나 싶은 것이다. 아주 간단한 농담이라도 그 근원에는 두려움의 가시가 감춰져 있다. 예를 들어 "새똥 속에 든 흰 것이 무엇일까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방청객들은 그 순간 학교에서 시험이라도 보는 양 바보 같은 대답을 해선 안 된다는 두.. 2018. 10. 28. 거짓말을 자꾸 하면 결국은 거짓말을 하는 자신도 정말인 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작은 부분을 그렇게 하다가 그것이 자신의 진실이 되어버리면, 다음에는 그 작은 부분을 포함한 보다 큰 틀의 거짓이 그의 '진실'이 되고, 그렇게 각색되어 나가다가 나중에는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그의 진실'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기에 한 형제가 있습니다. 형은 부모와 함께 생활합니다. 그러면 그 부모에게 잘해 주는 일도 있고,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도 있게 됩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형은 주로 자신이 잘못한 일만 떠올리고 그걸 남에게 이야기하며 가슴아파합니다.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불효'가 되어 버립니다. 그 동생도 당연히 가슴이 아프겠지요. 동생은 자신이 .. 2012. 6. 2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