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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이생진4

시가 너무 쉬워서 미안할 때가 있다는 시인 요즘 시가 해독 불가 수준의 난해함을 띠는 것에 당위성이 있는가? '시인수첩'(계간)이 마련한 좌담회(의미 : 우리 시가 나아갈 방향 모색―요즘 시가 해독 불가 수준의 난해함을 띠는 것에 당위성이 있는가?) 기사를 발췌해보았다. 대화체 문장은 신문에 실린 그대로 옮겼다. ●은 허영자(78) 시인의 견해 ○은 박성준(30)·박상수(42) 시인의 견해 ● "서투름을 시적 모호함으로, 무질서와 난삽함을 새로운 기술로 내세운다면 우리 시단에 독(毒)이 되지 않을까?" ○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다른 문학을 하고 있지만 이런 기형성에 역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 "함축과 운율, 정제된 형식을 통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시" ○ "시는 불완전한 것" "시를 쓰는 데 전문성이 필요한지도 의심스럽다" ● ".. 2016. 9. 30.
이생진 「칼로의 슬픔」 칼로의 슬픔 칼로*의 그림 앞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칼로의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서다 허나 그녀는 칼날 같은 눈으로 나를 흘겨보더니 네가 뭔데? 간섭하지 마 그래서 나는 슬그머니 손수건을 집어넣었다 고흐의 '슬픔'만 슬픔인줄 알았는데 칼로의 슬픔은 그보다 더하다 화살이 박힌 상처에서 피가 흘러도 칼로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고흐는 면도로 귀를 잘랐고 칼로는 수술대에서 다리를 잘랐다 고흐는 권총으로 가슴을 쐈고 칼로는 눈으로 자기를 쏘는 자의 가슴을 쐈다 결국 그들의 눈에 담고 간 것은 그들이 그리다 간 세상이다 고독의 아픔 그들의 고독에서 피가 난다 *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1907-1954) 멕시코의 화가 (2015.7.22) 여름이 시작될 무렵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들을 보았습니다. 블.. 2015. 9. 3.
이생진 「혼자 서 있는 달개비」-그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시 1 달랑 하나 남은 노란 열매가 안쓰럽습니다. 2 저 가지가 지탱하겠나 싶게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드나들 때마다 바라보며 으쓱해했습니다. '나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이다!' 그러나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저 나무 아래 풀숲을 뒤적이고 있었고, 아내는 좀 언짢은 표정으로 그 아주머니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나무는 열매들을 다 어떻게 했는지 저렇게 앙상한 몰골로 서 있었습니다. 여자는 버팀목까지 해둔 저 나무를 흔들어 떨어진 열매를 줍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날 저녁까지 주렁주렁 달려 있던 열매가 한꺼번에 다 익어서 가만히 두었는데도 우수수 떨어질 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설탕으로 버무려 효소를 만들겠다고 하더랍니다. "관리사무소에서 농약.. 2015. 7. 12.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 동천사 1994 Ⅰ 이생진 시인의 홈페이지 이름입니다. 거기에 가보면 언제라도 이 시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 「저 세상」 Ⅱ 토요일 오후 3시 30분. 영풍문고가 있던 자리의 분수대 앞에서 모이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찌감치 나섰더니 '이런……'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역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2시 30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나… 어디 찻집에라도 들어가 시간을 보내야 할까?'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을 보니까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헌책방이 눈에 띄었습니다. '옳지! 저기 숨으면 되겠구나.' Ⅲ 입구에서 안쪽까지 샅샅이 훑어가기로 했습니다. ― 한 권에 1,000원 ― 한 권에 2,.. 2015.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