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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욕심3

버려진 책장 : 먼지 대신 책 버리기 적어도 서너 곳일 이 아파트 폐기물 처리장에는 걸핏하면 멀쩡한 책장이 나와 있다. 물론 다른 가구도 나온다. '저렇게 나와 있으면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 'AI 시대가 되어 책장 같은 건 구식 가구가 된 걸까?' '내겐 저걸 들여놓을 만한 공간이 없지?'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을 텐데...' 책을 모으고 틈틈이 분류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하던 시기는 지나가버렸다. 그 시절엔 그렇게 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위나 돈 따위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가치였다. 그런 책이고 책장이었다. 그 책, 그 책장들이 바로 나라고 해주면 그보다 고마울 일이 없었을 것이었다. 이젠 그렇진 않다. 뭐가 변했나? 아니다. 세월이 갔을 뿐이다. 세월이 간 것이어서 그런 흐름에 무슨 관점이 필요할 것도.. 2023. 3. 22.
이 허접한 욕심 Ⅰ 나이가 나보다 좀 적은 편인 지인이라면,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잘 있었는지 확인하고나면 매우 어색해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화제도 없고 해서 인사삼아 더러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운동도 좀 하십니까?" "아직 죽지 않았네요?" 하고 인사하기는 난처해서 "더 살려면 이제라도 운동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고 싶은 걸 그렇게 묻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기야 만나도 탈 날 일은 없지만 영영 만나지 않아도 하나도 궁금하지 않을 사이에는 그동안 궁금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 할 수도 없고, 반대로 "아직까지 살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근한 척 하려고 해도 최근의 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내용을 묻고 답하며 .. 2015. 2. 10.
필립 톨레다노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필립 톨레다노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DAYS WITH MY FATHER』 최세희 옮김, 저공비행, 2013 '아버지' '치매' '(부모와) 함께하다' 이런 단어라면 아예 쳐다보기조차 싫을지도 모릅니다. 그 의식에 합리적인 점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좀 과격하게 말하면 "그렇게 해서 망가져 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이래저래 많이 망가진 인간입니다. 이 책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한 '사진일기' 혹은 '포토 에세이'입니다. 일기(에세이)의 주인 필립 톨레다노는 사진작가입니다. 아버지는 작은 쿠키들을 가슴에 올려놓고 "내 찌찌 봐라!" 하며 웃습니다. 며느리에게 "죽여주는 몸매"라고 칭찬하기도 합니다. '성 폭행'입니까? ……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그리운지 .. 2013.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