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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알베르 코엔5

알베르 꼬엔 《주군의 여인 2》 알베르 꼬엔 《주군의 여인 2》윤진 옮김, 창비 2018      그리하여(《군주의 여인 1》) 쏠랄과 아리안은 다시는 헤어날 길 없는 사랑의 늪에 빠져버린다. 이 소설은 그 사실을 끝없이, 그리고 자세하게 이야기해 준다.아리안이 잠시 출장을 간 쏠랄에게 보낸 편지 일부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저녁 8시에 집으로 돌아왔죠. 9시 오분 전엔 북극성을 보기 위해 정원으로 뛰어갔고요. 당신도 북극성을 봤겠죠. 당신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 다음엔 나의 숲을 거닐었고, 꽤 늦게까지 있었어요. 침대에 누워 당신이 보내온 전보들을 다시 읽었는데, 혹시라도 편지에 담긴 향기가 날아가버릴까 봐 너무 많이 읽지는 않았어요. 당신의 사진도 손으로 가려가며 조금씩 봤죠. 그것도 너무 오래 보지는 않았고요. 안에 담긴 .. 2024. 12. 24.
보고서 만들기 사교육비 절감 방안 T/F를 만들어 밤낮으로 토론하고 검토한 결과로써 두툼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 일은 역사적으로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 T/F에 소속되었을 때 나는 다른 볼일을 보고 싶어서 늘 미적거리고 핑계를 대고 하다가 말았다. 미안했지만 그런 일은하기 싫었고, 그 대신 열심히 일한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 섭섭해하지 않았다.덧붙이면, 그래봤자 별 수가 없어서 사교육은 자랄 대로 자라왔다. 소설 "주군의 여인"을 읽으며 또 그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국장들은 갈팡질팡하면서도 요령껏 능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자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말이 너무 길어서 짜증이 난 동료들이 메모지 위에 도형을 그리고 또 우울한 얼굴로 그림을 다듬는 동안에, 판프리스.. 2024. 12. 12.
알베르 꼬엔 《주군의 여인 1》 알베르 꼬엔 《주군의 여인 1》윤진 옮김, 창비 2018      스위스 호반도시 주네브의 국제연맹 사무차장 쏠랄, 젊고 키가 크고 잘 생기고 직위가 높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유대인 쏠랄은 뭇 여자들이 사랑을 퍼붓는 동쥐앙이지만 그는 자신의 외모와 직위 같은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적인 사랑을 꿈꾸며 파티에서 만난 부하직원의 부인에게 첫눈에 반한다.그 '아름다운 여인'은 주네브 명망가(家) 출신  유부녀 아리안 도블이고, 무능하고 천박하면서 출세만을 꿈꾸는 범속하기 이를 데 없는 국제연맹 B급 직원 아드리앵 됨이 그녀의 남편이다.쏠랄의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꿈은 그에게 모든 일, 모든 여자에 대한 경멸감을 품게 한다. 아름다운 여인 아리안에게도 그렇게 접근하다가, 그녀의 남편 아드리앵을 A급 직원으.. 2024. 12. 10.
식이요법 실패 이야기는 재미있다 왜 그럴까? 재미있을까? 남의 일이니까? 글쎄, 아주 가까운 주변 사람의 일인데도 우울하게 들리진 않는다. 나는 내 몸무게가 아무래도 정상범위를 넘어선 사실을 결코 우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밝게? 재미있게? 그건 가능하다. 먹는 얘기는 아득한 옛날부터 일단 흥미로운 것이어서일까? 모르겠다. 나는 사실대로 말하면, 먹는 이야기, 식이요법 실패 이야기는 성공담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성공담 같은 건 듣고 싶질 않다.알베르 코엔이 어머니의 식이요법 실패담을 재미있게 이야기해 놓은 걸 보고 '그렇지!' 싶어서 옮겨 썼다.  그녀는 의지가 강하지 못했다. 식이요법을 계속하지 못했고, 심장병 때문에 해마다 몸이 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주네브에 올 때마다 작년보다 체중이 몇 킬로나 줄었다고 주장했다. 나는 .. 2024. 11. 28.
알베르 코엔 《내 어머니의 책》 알베르 코엔 《내 어머니의 책》조광희 옮김, 현대문학 2002      가엾은 엄마, 이 세상의 기쁨을 철저하게 박탈당했던 엄마,엄마, 당신이 준 내 손에 입을 맞출 수밖에 없어요.어쩔 수 없이 벌써 푸른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그 작은 손. 사랑하는 엄마,그 서투른 성녀─자신이 성녀임을 알지도 못하는─아, 나의 수호신, 엄마, 내 사랑하는 딸이여!오, 내 잃어버린 젊은 시절인 엄마.오직 한 사람뿐인 나의 유일한 간호원,오 당신, 유일한 사람, 어머니, 내 어머니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내 열 살 적 예쁘던 엄마, 이제는 거의 해골로 변한 그 엄마, 천천히 흘러내리는 내 눈물에도 무심하고, 귀먹고 무감각한 내 엄마,여왕폐하,당신들, 모든 나라의 어머니들, 내 어머니의 자매인 당신들.. 2024.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