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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시 읽기4

책 읽기 1 나는 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열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내내 책에 꽂혀 지냈고 이젠 책이나 읽으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책은 어느 분야를 정하고 집중적으로 읽어도 좋겠지만(그게 거의 당연하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것저것 읽을 만하다 싶은 걸 종횡무진으로 읽어치워도(치우다니?) 세상의 책은 무궁무진하니까 얼마든지 좋은 일이지 싶었습니다. 읽지 않는 사람이 보면 미쳤다고 해도 나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부모는 두 분 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세상을 떠났고, 피붙이 중에는 그런 나를 가리켜 "책만 읽으면 뭐가 나온다더냐?" 하고 비난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 열정과 노력으로 다른 일을 했더라면...... 그 어떤 일을 했더라도 뭔가 얼마쯤의 성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성과 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2020. 11. 27.
이다희 「두 개의 붉은 줄」 두 개의 붉은 줄 이다희 그녀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셔츠를 들어올렸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비가 내렸고, 달리기에는 가방이 무거웠다. 얇은 셔츠는 피부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셔츠를 벗고 나머지도 벗었다. 그녀가 빠져나가자 옷은 작고 납작해졌다. 방금 전까지 그녀를 감쌌던 옷은 허름해 보였다. 옷은 벌써 그녀를 잊은 듯했다. 아침에 벗어둔 잠옷을 침대 옆에서 찾았다. 잠옷과 비에 젖은 옷들을 하나씩 집어 올려 손에 모았다. 모두 같은 세탁기에서 돌려질 참이었다. 거울 앞을 지날 때 그녀는 자신의 알몸을 흘끗 쳐다봤다. 거울이 깨진다는 것은 거울의 모든 경험이 깨진다는 것이다. 거울의 경험은 거울의 것이지만 거울 앞에 섰던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깨진 거울은 다시 깨질 수 없고 조각들은 여러 장의.. 2019. 11. 20.
「밝은 밤의 이웃들」 밝은 밤의 이웃들 정다연 오늘은 언덕 위에 눕혀진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 된 기분 다 지켜본 기분 이웃한 인간이 이웃해 있는 다른 인간보다 높게, 더 높게 석상을 세우려다 서롤 죽이고 죽였다는 얘기 석상보다 더 거대하게 시체와 시체로 탑을 쌓았단 얘기 섬 전체가 불탔다는 얘기 이곳은 더 이상 나무가 자라지 않아 이곳은 더는 새가 날지 않아 태풍이 부드럽게 새 한 마릴 납치해 이끼 낀 석상 위에 산 채로 보내주는 일도 없어 인간이 멸종마저도 멸종시켰기 때문에 또다시 절벽은 절벽이지 둥지가 되진 않아 종려나무는 종려나무가 되기를 멈추었어 씨앗은 씨앗이길 포기했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씨앗이 씨앗이기를 감수하고 종려나무가 종려나무 숲이 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하기까지 오늘은 이목구비가 뻥뻥 뚫린 언덕이 된 기분 .. 2019. 6. 28.
시도 읽지 못하게 된 바보 시도 읽지 못하게 된 바보 Α 한 월간 문예지를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읽었습니다. 너무 혼란스럽고 분주하게 살 때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고, 사놓고 읽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때가 몇 달, 심지어 몇 년간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근래의 20년 가까이에는 한 달도 거르지 않았고, 그 책.. 2016.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