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4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조석현 옮김, 알마 2016 의사가 장갑을 들어올리며 뭐냐고 묻는다.P 선생이 대답한다. "조사해봐도 되겠습니까?""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어요. 주름이 잡혀 있군요. 음, 또 주머니가 다섯 개 달려 있는 것 같군요. 음, 말하자면...""맞습니다. 설명을 하셨으니 이제 그게 뭔지 말해보세요.""뭔가를 넣는 물건인가요?""그래요. 그런데 뭘 넣는 거죠?""안에다 뭔가를 넣는 거겠죠."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잔돈주머니일 수도 있겠군요. 크기가 다른 다섯 가지 동전을 집어넣는... 아니 어쩌면..." P 선생의 뇌는 기계처럼 정확하게 기능했다. 시각 세계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면에서 그는 컴퓨터와 똑같았다. 더 놀라운 점.. 2025. 1. 10. 심익운(沈翼雲) 「딸을 잃고 처음 강가로 나갔다」 딸을 잃고 처음 강가로 나갔다 집의 좌우에 약초밭과 화원이 있어 어딜 가든 따라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마음이 아파도 책은 펼쳐보지 않는다. 책을 말리던 그날 네가 받쳐 들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喪兒後 初出湖上 悲悼殊甚 詩以志之 藥圃花園屋左右(약포화원옥좌우) 閑居何處不從行(한거하처불종행) 傷心未忍開書帙(상심미인개서질) 曬日他時憶爾擎(쇄일타시억이경) 영조 시대에 천재로 알려진 지산(芝山) 심익운(沈翼雲·1734~?)이 어린 딸을 잃고 썼다. 사는 집의 좌우 양편에는 약초밭도 있고 화원도 있어 한가로이 집에 머물 때면 자주 나가봤다. 그때마다 딸은 꼭 뒤따라 나와 함께 걸었다. 이제는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약초밭이고 화원이고 가질 않는다. 그나마 아픈 마음을 잊기에는 책을 읽는 것이 좋을 텐데 그 책도 펼치.. 2022. 4. 20. 『상실 수업』⑵ 편지쓰기(발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데이비드 케슬러 『상실 수업』 김소향 옮김, 인빅투스, 2014 때로는 과거를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들어 그것을 정화하려고 한다. 우리의 실수가 밖으로 퍼져나가기를 원치 않으며 특히 누군가를 잃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이런 작업을 거치다 보면 그 사람의 전부 그리고 장단점, 밝고 어두운 면 모두 포함한 그대로의 모습을 애도할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150) 슬픔은 밖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고통과 슬픔은 오직 표현할 때만이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사랑한 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실천하기 편하며, 단어를 밖으로 꺼내어 언제든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의사소통을 상실해버린 고인이 된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써야 하며 심지어 왜 편지를 써야 하는가? 기억나는 만큼 멀리 과거.. 2022. 2. 10. 반환(返還) 반환(返還) 소중한 사람들은 떠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건 '상실(喪失)'이었습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이제 내게는 더 이상 소중한 것들이 찾아오지 않겠구나 싶을 때쯤 이번에는, 하나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조차 사라지면서 '아! 이런 것들마저……' 싶은 상실감을 느꼈는데, .. 2017. 6. 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