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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삼국유사4

효소왕이 진신 석가를 몰라보다 효소왕이 진신 석가를 몰라보다 8년 정유에 낙성회를 열어 효소왕이 친히 가서 공양했다. 그때 한 비구승이 있었는데 모습이 누추했다. 그는 몸을 움츠리고 뜰에 서서 청했다. “빈도도 재에 참석시켜주기를 바랍니다.” 왕은 그에게 말석에 참예하라 허락했다. 재를 마치려 하자 왕은 그를 희롱하고 비웃었다. “비구는 어디 사는가?” 중은 말했다. “비파암琵琶巖에 있습니다.” “지금 가거든 다른 사람들에게 국왕이 친히 불공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말하지 말라.” 중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폐하도 또한 다른 사람에게 진신 석가를 공양했다고 말하지 마시오.” 말을 마치자 몸을 솟구쳐 하늘에 떠서 남쪽으로 향하여 가버렸다. 왕은 놀랍고 부끄러워 동쪽 산에 달려 올라가서 그가 간 방향을 향해 멀리서 절하고 사람들에게 가서 찾.. 2022. 3. 17.
사문 광덕廣德과 엄장嚴莊 광덕과 엄장 광덕이 서방 극락으로 가다 문무왕 때 사문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란 이가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친하여 밤낮으로 약속했다. "먼저 서방 극락으로 가는 이는 마땅히 서로 알리세." 광덕은 분황 서리西里에 숨어 살면서 신 삼는 것은 직업으로 하여 처자를 데리고 살았으며, 엄장은 남악南岳에 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숲의 나무를 베어 불살라 경작했다. 어느 날 해 그림자는 붉은빛을 띠고 솔 그늘이 고요히 저물었는데, 창 밖에서 소리가 나면서 알렸다. "나는 이미 서쪽으로 가니 그대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오게."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서 보니, 구름 밖에서 하늘의 음악소리가 들리고 광명이 땅까지 뻗쳐 있었다. 이튿날 엄장은 광덕이 살던 곳을 찾아가 보니 광덕이 과연 죽어 있었다. 이에 그의 아내와 .. 2022. 3. 13.
인간 엄장의 길 이 글을 필사하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극락에 가고 싶은 것일까요? 아니요! 나는 일쑤 내 거처로 들어온 개미 두어 마리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끝으로 눌러 죽입니다. 그것들에게 영혼이 있을까요? 그럴 것 같질 않네요. 그럼 내 영혼도 없음을 확신하고 끝나는 날 저녁 누가 내려다보고 있어도 좋고 사라져도 좋다고 하면 사라지는 쪽을 택할 것입니다. 그럼 왜 이런 작업을? 온갖 상념을 불러오는 이런 이야기가 좋았을 뿐입니다. 엄장과 광덕, 두 사람 중 한 명이라면 나는 서방 극락 세계로 간 광덕이 아니라 광덕의 아내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엄장입니다. 나는 인간 엄장을 생각하며 이 글을 필사했습니다. 인간의 길은 끝이 없음을 확인하며 가는 봄날 밤입니다. 광덕이 서방 극락으로 가다 문무왕 때 사문 광덕廣德과 .. 2021. 5. 10.
한 늙은이 「헌화가獻花歌」 철지난 꽃을 보며 지나가다가 국어 선생님이 낭독해 주시던 '헌화가'가 생각났습니다. 짙붉은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다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에 나오는, 수로부인 이야기입니다. 성덕왕 때에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지금의 명주(溟州)―로 부임할 때 바닷가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 곁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데, 높이가 천길이나 되는 그 위에는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水路)는 이것을 보고 가까이 모시던 이들에게 청했다.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겠소?" 종자들은 대답했다. "그곳은 사람의 발자취가 이르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러고는 모두 안 되겠다 했다. 그 곁으로 한 늙은이가 암소를 .. 2020.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