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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봄날5

벚꽃잎 떨어져 사라져가는 봄날 일본 정신의 뿌리와 그 정체성을 찬양하기 위해 《무사도》(양경미·권만규 옮김, 생각의나무 2004)라는 책을 쓴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는 그 책의 마지막을 비장하게, 서정적으로 다음과 같이 끝냈다. 무사도는 하나의 독립된 도덕의 규칙으로서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힘은 지상에서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 무용(武勇)과 문덕(文德)의 교훈은 해체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광명과 영광은 폐허를 뛰어넘어 소생할 것이 틀림없다. 그 상징인 벚꽃처럼 사방에서 부는 바람으로 꽃잎이 흩날려도 그 향기로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인류를 축복할 것이다. 백 년 뒤, 무사도의 관습이 사라지고 그 이름조차 잊혀지는 날이 올지라도 "길가에 서서 바라보면" 그 향기는 보이지 않는 머나먼 저편 언덕에서 바람과 함께 .. 2023. 4. 4.
BTS "봄날" 나는 요즘 우울합니다. 우울한 날에도 늙어가긴 합니다.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도 시간은 갑니다. 혼자서 BTS 부산 공연 실황 중계방송을 보던 밤이 떠오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보라색 함성'이 지금도 다 그대로 "보입니다". 그때도 나는 우울 모드였는데 아, 이런... 그때는 지금보다는 덜 우울했고 나았던 것 같습니다. 그 가을밤이 그립습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그 때가 '가을밤'이었습니다. 그런대로 좋은 가을밤이었었습니다. '봄날'이었지요, 아마? 그들이 끝에, 개별로 이별 인사를 하기 전에, 그러니까 공연 마지막에 불러준 노래... 봄날... 그들은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면 오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그 "여러분"의 한 명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2022. 11. 14.
"봄이 폭발했다" 오늘이 경칩(驚蟄)이죠? 개구리가 봄이 온 것도 모르고 늦잠을 자고 있다가 놀라 깨어난다는 날. 봄이 진짜 완연했습니다. 하기야 입춘 지난 지 한 달이잖아요? 그 사이에 우수(雨水)도 지났고요. 봄은 늘 이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왔던가요? 지난 1일에는 강원도를 중심으로 폭설이 내려서 눈에 갇힌 사람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일곱 시간을 추위에 떨었다는데 그렇게 오들오들 떨며 "봄인데 이 고생이네" 했겠습니까? "아무래도 아직은 겨울이야" 했기가 십상이지요. 그런데 사나흘 후 '완연한 봄'이라고 하면 이건 눈 깜빡할 사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봄은 슬며시 오는 게 아니라 "짠!" 하고 불쑥 얼굴을 내민 거죠. 그러니까 개구리도 "앗! 봄이야?" 하는 것이겠지요. 말벌과 파리 떼들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2021. 3. 5.
봄날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봄날 지음, 반비, 2019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수학여행을 보내달라고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엄마도 거들어줘서 간신히 허락을 받아내어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담임교사와 교감 선생의 "공납금도 제대로 못 내는 주제에 무슨 수학여행이냐? 그 돈으로 공납금이나 내라."라는 한 마디에 나는 수학여행을 포기했다. 전부 돈이 문제였다. 담임교사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 사는지 알려고 들지 않았고, 공부 잘하고 돈 많은 집안의 아이들에게만 신경 썼다. 담임교사의 눈에 나는 그저 가난하고 지질한 아이였다.(21~22) 내가 20여 년간 경험한 성매매 업소는 나를 때린 아버지와 어린 나를 성추행한 삼촌과 나를 강간하며 웃던 그놈, 임신한 나를 버리고 간 군인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 2020. 1. 10.
「이 봄날」 2017.4.7. 이 봄날 산수유 매화 목련 벚꽃 민들레 노랗거나 하얗고 잔잔한, 이름을 알 수 없는 그것들도 함께 아파트 정원이면 어떠냐는 듯 일제히 피어나는 아침 추억 같은 이 봄날 되풀이되는 걸 보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요 좀 보라고 행복한 하루가 아니냐고 묻고 싶어요 살아 있다면 .. 2017.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