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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달밤5

달빛 가득한 밤 서울에 가면 이런 시간에도 불야성이겠지.서울 아니어도, 가로등만으로도 밤새 하얗게 밝은 곳도 얼마든지 있지.자칫하면 세상이 쓸쓸한 줄도 모르고 외로운 곳인 줄도 모르게 되지.건너편 아파트를 내다보면 매일 밤 몇 집은 밤새 불을 밝히고 있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나?' '누가 아파서 도저히 불을 끌 수가 없나?'...... 그런 걱정 없이 자리에 들며 그나마 다행이라는 느낌으로 잠들게 되지. 이곳은 전혀 달라.가로등이 없어.너무 적적해.개울 건너편 나지막한 집 보안등만 밤새 반딧불처럼 깜빡여.나만 불을 밝혀두면 온갖 벌레들이 다 모여들겠지. 내가 모르는 짐승 두어 마리가 저 집 뭐 하는지 가보자고 할 수도 있겠지. 나는 그건 싫어. 걱정스러워. 그렇게 잠들면 반쯤 열어놓은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온 달빛.. 2024. 5. 29.
달밤 그대는 다르 자루크의 밤들을, 달빛이 바다의 수면에 거품 같은 빛을 뿌려놓던 그 투명한 밤들을 기억하는가. 그 많은 폐허들 위에, 그 많은 추억들 위에, 그 많은 살아 있는 존재들과 그 많은 희망들 위에 시간이 멈추어 있었다. 눈 속에, 마음속에 모든 형태를 만들어내 보였던 그 풍경에서 무엇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보름 지난 지 엿새째, 오늘 새벽 2시쯤이었습니다. 다시 잠들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밤이 되풀이됩니다. 책장을 넘기기도 어렵습니다. 돋보기도 맞지 않게 되었지만 하필이면 끔찍한 아우슈비츠 이야기에 코로나 열풍이 불고 있는 이 상황이 오버랩되어 그것도 싫습니다. 장 그르니에가 "지중해의 영감"에서 심금을 울려주던 우리의 달밤 그리운 그 달밤 2020. 3. 15.
달빛 아래 눕기 2019.4.27. 달빛 아래 눕기 * 괜히 잠이 깨어 잠시 일어나 앉았습니다. 첫새벽이어서 다시 누우려고 뒤돌아보다가 그 자리에 달빛이 들어와 있는 걸 보았습니다. 창문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봤더니 우기(雨氣)가 차 있어 선연하진 않은 대신 평소에 비해 부드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달빛이 나.. 2019. 5. 19.
이규리(시) 「아테네 간다」 아테네 간다 이규리 한밤중 거실에 나오니 마룻바닥에 깔린 달빛 눈부셔 거기 누가 왔나 달빛 내려 퍼지던 아테네의 언덕이 생각나고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연주하던 야니의 피아노가 들리고 먼 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를 걱정하며 잠은 다른 잠으로 가고 한밤중 홀로 아테네 간다 그렇지 달빛이었지 달빛 아테네였지 피아노 앞의 그가 흰 소매를 움직일 때마다 신들이 미끄러져 나와 심심하던 그들은 춤을 추었지 파르테논의 기둥을 건반처럼 만지던 법과 생과 사 신들은 신이 났을 것이다 나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저 신들의 나라에 입성하는 거 아이야 공부가 힘들면 잠시 신들의 회의나 엿볼까 그중 아주 평범하고 인자한 신도 있는 거라 꿈이 신탁이 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으나 달빛 요요히 뿌려 광장이 .. 2018. 11. 8.
정양 「달밤」 달 밤  정 양  떠난 사람 보고 싶어서풀들은 더 촘촘히 돋아나텃밭도 마당도 장독대도 두엄자리도아무 데도 안 가리고 우거지더니우거지다 지친 풀들 길 잃고아무데나 드러눕는 빈집에달빛이 가득 고였다한세상 번번이 길 잘못 들어돌아올 길 영영 잃어버린 얼굴이달빛 쓰러지는 풀밭에 드러눕는다   ――――――――――――――――――――――――――――――정양 1942년 전북 김제 출생. 1968년 『대한일보』 등단. 시집 『까마귀떼』『수수깡을 씹으며』『빈집의 꿈』『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눈 내리는 마을』『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나그네는 지금도』『철들 무렵』『헛디디고 헛짚으며』 등. 〈백석문학상〉〈구상문학상〉 등 수상.  『現代文學』 2017년 7월호.        떠난 사람 보고 싶은 건 사오십 년 전이나 지금.. 2017.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