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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김행숙4

프란츠 카프카 「사이렌의 침묵」 2013년 5월 14일에 올렸던 자료입니다. 블로그 시스템이 바뀌고나니까 편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눈에 띄는 대로 글씨체를 바꾸곤 했는데 본래의 날짜에 올린 것으로 저장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오늘 날짜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료를 보러 오는 분은 끊임없지만, 댓글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으므로 댓글란을 없앴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오디세우스는 칼립소(트로이에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를 7년간 오지지아 섬에 잡아 두었던 바다의 정령 : 번역자 민희식의 주)의 분부대로.. 2020. 8. 11.
김행숙 「마지막 여관」 마지막 여관 김행숙 조금 전에 키를 반납하고 떠나는 손님을 봤는데 분명히, 당신은 그 손님과 짧은 작별 인사까지 나눴는데 당신은 빈방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더 이상 빈방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말은 이상하게 들립니다. 당신은 기껏해야 작은 여관의 문지기일 뿐인데, 세계의 주인장처럼 당신의 말은 몇 겹의 메아리를 두르고 파문처럼 퍼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동심원 가운데 서 있으면 나도 나를 쫓아낼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겨울 산속에서 길을 잃은 나무꾼 이야기 같은 게 자꾸 생각나고,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인데, 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을까? 왜 그런 이야기만 기억날까? 왜 그런 이야기에 도시빈민 출신의 내가 나오는 것일까? 깊은 산속에서 나는 간신히 여관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여.. 2020. 6. 20.
김행숙 「작은 집」 작은 집 김행숙 리셋하자, 드디어 신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신의 말에 순종하여 밤낮으로 흰 눈이 내리고, 흰 눈이 내리고, 흰 눈이 내려서…… 이 세상 모든 발자국을 싹 지웠네. 보기에 참 아름답구나. 그런데…… 신이란 작자가 말이지, 이 광활한 세계를 한눈에 둘러보느라 시야가 너무 넓어지고 멀어진 나머지 조그만 집 한 채를 자기 속눈썹 한 올처럼 보지 못했다지 뭔가. 옛날 옛적에 잃어버린 꽃신 한 짝과 같은 그 집에는 늙은 여자 혼자 살고 있었다네. 어느덧 늙어서 동작도 굼뜨고 눈도 침침하고 기억하는 것도 점점 줄어들어 인생이 한 줌의 보리쌀 같았대. 늙은 여자 한 명이 날마다 불을 지피는 세계가 있고, 마침내 늙은 여자 한 명이 최후의 불꽃을 꺼뜨린 세계가 있어서, 신이 견주어본다면 이 두 개의 시.. 2018. 3. 23.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김 행 숙 신발장의 모든 구두를 꺼내 등잔처럼 강물에 띄우겠습니다 물에 젖어 세상에서 가장 무거워진 구두를 위해 슬피 울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신발이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국가도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저녁이라면 그 곁에서 밤이 슬금슬금 기어나오고 있습니다 기억의 국정화가 선고되었습니다 책들이 불타는 밤입니다 말들이 파도처럼 부서지고 긁어모은 낙엽처럼 한꺼번에 불타오르는 밤, 뜨거운 악몽처럼 이것이 나의 밤이라면 저 멀리서 아침이 오고 있습니다 드디어 아침 햇빛이 내 눈을 찌르는 순간에 검은 보석같이 문맹자가 되겠습니다 사로잡히지 않는 눈빛이 되겠습니다 의무가 없어진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나의 아침이라면 더 깊어지는 악몽처럼 구두가 물에 가라앉고 있습니.. 2017.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