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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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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의 이 길에서 나는 어차피 여기를 거치기로 되어 있었는데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벌어질 줄 알고 그 생각을 할 수 없었다.그래서 여기에 이르러 나는 황당해하였다.'어떻게 이렇게 되었지?' 의아하기도 했다.심지어 어이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로 보아야 한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여기로 오기로 되어 있고, 이후 또 한곳으로 가는 것이지만 여기 올 때처럼 제각각 다른 길로 오게 되고, 제각각 다른 길로 가게 되는데, 제각각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좋은 길 혹은 당연한 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망설일 것 없어! 이렇게 가면 되는 거야!" 심지어 그렇게 여기는 실없는 사람도 보인다.그러면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말 가능성이 있고, 모두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걸로 착각하다가 쓰러질 것이다... 2025. 4. 28.
내가 볼 수 없었던 길 나는 일주일에 적어도 서너 번은 저 아파트 앞길이나 뒷길을 오고 간다. 십 년이 넘었지 싶다.그런데 저 계단으로 오르는 길은 오늘 아침 처음으로 봤다.'이럴 수가! 그동안 뭘 바라본 거지?'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왼쪽에 아파트 주민들의 전용 독서실과 피트니스 클럽이 있다.그동안 내 눈엔 그 방들의 표지판만 보였다. 나는 우리 아파트나 내 집에 대해서는 다 파악하고 있는 걸까?정신을 차려서 혹은 다른 눈으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나를 스쳐간, 내가 지나쳐 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다가가는 길을 면밀히 파악했었다면 그들은 얼마나 놀라워하거나 고마워했을까?더 가까워질 수도 있었겠지?그러나 이제 다 가버렸으므로 정신 차려 살펴볼 수가 없게 되었다.어쩔 수 없는 일이다.지금 내 곁에 남.. 2025. 4. 1.
내가 싫어하는 것 나는 좋아하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지금은?거의 다 잃었고, 의미를 상실하기도 했다. 그만큼 의욕도 별로 없다.싫어하는 건 꽤 있다.그중 한 가지는 전에도 방황했던 바로 거기 어디쯤에서 다시 길을 잃고 헤매는 꿈이다. 그 방황, 그 길이 싫다.그런 꿈을 꾸게 되면 아, 어쩌다가 또 이 꿈을 꾸게 되었을까 생각하며 헤맨다. 2024. 8. 9.
장석남 「사막」 사막 장석남 1 나를 가져 내 모래바람마저 가져 나를 가져 펼친 밤하늘 전갈의 숲 사막인 나를 가져 목마른 노래 내 마른 꽃다발을 가져 2 내가 사막이 되는 동안 사막만 한 눈으로 나를 봐 너의 노래로 귀가 삭아가는 동안 바람의 음정을 알려줘 내가 너를 갖는 동안 모래 능선으로 웃어줘 둘은 모래를 움켜서 먹고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없는 노래로 눕는 거야 나는 너를 가져 사막이 될 거야 나는 너를 가져 바람 소리가 될 거야 ..................................... 장석남 1965년 인천 덕적도 출생. 1987년 『경향신문』 등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젖은 눈』『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뺨에 서.. 2024. 4. 11.
이 행복한 꽃길 웃으시겠지요. '나의 길'입니다. '행복의 길'. 그렇지 못한 날도 있겠지요? 그런 날은 이 생각을 떠올릴 것입니다. 함께 내려가고 올라옵니다. 이야기하며 걷다가 투스텝으로 뛰어가면 부지런히 뒤따라갑니다. 힘들다고 하면 '그 참 잘 됐다!'며 얼른 어부바를 합니다. 물론 우리의 소지품도 내가 다 든 채입니다. 저 꽃 터널 사진을 보다가 그렇게 오르내리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런 장면을 누가 봐도 볼 텐데 그렇게 하면서도 부끄럽거나 쑥스럽진 않습니다. 나는 어쩔 수가 없는 인간입니다. 업혀서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힘들다고 할까 봐 걱정은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나를 자꾸자꾸 불러줍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은 점점 줄어들겠지요. 그게 아쉽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또 .. 2018. 7. 11.
☆☆의 손편지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았습니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옮겨놓기로 했습니다. 선생님께 일요일 저녁 8시 37분.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 오후에 ○○대 잔디밭에서 내내 공을 차고 논 세 녀석은 버얼써 잠들었구요, 아이들 아빠도 출근을 위해 ◎◎으로 들어가고, 좀 이른 저녁시간이지만 대충 정리하고 방 한 켠 앉은뱅이책상에 앉는 행복한 순간이 왔습니다. 놀토가 더 피곤합니다, 저에게는. 금요일, 수목원에서 전화를 받던 그 순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생각해보곤 하면서, 문득 감정의 새싹이 돋듯 약간 간질거리면서 가슴이 충만해져오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선생님께서 여유가 생기시고 좀 자유로워지시니까 표현도 매우 free하시구나.’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던데요. 선생님. 메일보다 손편지가 훨씬 제.. 2010.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