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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부끄럽다, 나는 어찌할 길 없는 노인이다

by 답설재 2026. 4. 25.

한때 내게도 노인이 알아둘 일을 부지런히 퍼다 날라주는 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하! 이런 금과옥조(金科玉條)를 알려주다니!' 싶어서 어디에 적어 두기까지 했는데, 이후 거의 날마다 그런 금과옥조를 퍼다 날랐다. 주로 '좋은 글'이라는 제목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퍼다 나르는 이는 내가 소홀히 여길까 봐 매번 "이건 적어 놓든지 꼭 기억해야 한다!"는 부탁을 빠트리지 않았는데 나는 이내 싫증을 느껴서 지겹다고 했더니 돌연 뚝 끊어졌고, 지금은 내게는 그렇게 해주는 이가 없다.

 

보고 싶으면 유튜브를 보면 된다. 수없이 많다. 그들은 꼭 "~~ 하는 몇 가지"를 내세운다.

사실은 좀 자세한 파일 하나만 있어도 (좀 심하게 말하면) '죽을 때까지' 충분하다.

그 하나라도 매일 들여다보면 좋은데 그조차 쉽지 않을 뿐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겉으로는 객쩍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야말로 금과옥조인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란 에세이를 이 블로그에 쓸 때,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가 '내가 늙었을 때 명심해야 할 일'이라며 열다섯 가지를 들었더라는 얘기를 덧붙인 걸 오랜만에 보았다.

오랜만에? 사실은 그 얘기를 덧붙인 걸 잊고 있었다. 나는 그만큼 노인으로서의 태도에 대해 무관심하다. 글을 쓰는 건 그렇게 하겠다는 건데 써 놓기만 하고 '늘 그 자리'이니 한심하다.

 

누가 찾아오면 그 사람 이야기를 듣는 데 열중하고 내 얘기는 조금만 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실천하지 못했다.

부끄럽다.

이번 달에도 귀한 손님 두 팀이 집 앞 카페로 찾아왔는데 나는 열변을 토하진 않았지만(아마도 열변을 토했을 수도 있다), 말은 많이 했다.

정말 부끄럽다. 다짐이 소용없다.

나를 찾아오는 이들이 '이 사람이 오늘은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 하고 용의주도한 질문을 만들어 오는 걸까? 혹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려고 작전을 가지고 오는 건 아닐까?

그럴 리는 없다. 내가 문제다.

부끄러워하고 새로 다짐해야 한다.

 

그건 그렇고 조너선 스위프트의 충고(다짐)는 다음과 같다. 출처는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에 있으니까 생략하기로 하고, 번역이 좀 아리송한 것도 내 책임이 아니니 불문에 부치기로 한다.

 

 젊은 여성과 결혼하지 말 것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경우가 아니면 친구 삼으려 하지 말 것

 짜증내거나 시무룩해하거나 의심스러워하지 말 것

 현재의 방식, 유머, 패션, 남자, 전쟁 등을 비난하지 말 것

 아이들을 좋아하지 말며, 아이들이 내 곁에 절대로 오지 못하게 할 것

 같은 사람한테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하지 말 것

 탐욕 부리지 말 것

 더러워지는 불안함 때문에 품위나 청결을 무시하지 말 것

 젊은이들에게 너무 엄격하지 말고,

 젊음에서 말미암은 어리석음과 약점을 참작할 것

 품위와 청결을 소홀히 하지 말 것

 조언이나 훈계를 남발하지 말 것

 나의 조언을 청하는 사람 외에는 청하지도 않은 조언은 삼갈 것

 많은 말을 삼갈 것, 특히 내 얘기

 과거의 아름다움이나 건강을 자랑하지 말 것

 

나의 경우는 어떤지 밝히는 것은 췌언이 되겠지만 '젊은 여성과 결혼하지 말 것'은 이건 뭐 '해당사항 없음'이고, ' 아이들을 좋아하지 말며, 아이들이 내 곁에 절대로 오지 못하게 할 것'은 의아하기도 하고 그럴듯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좀 얼떨떨하고, 다른 열세 가지는 모두 '심각한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