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하늘가 애처로운 박명을 보고 커튼을 내린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어둑어둑한 초저녁 여섯 시에 시작된 라디오 프로그램은 겨우 한 시간이 지났으니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아득하다.
이렇게 해서 오늘 저녁은 또 언제까지 계속되려는 걸까?
아니지, 한 시간만 기다려 다른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드디어 밤은 되돌아 나올 수 없는 동굴처럼 깊어가겠지.
나는 또 긴 겨울밤을 혼자 지내게 된 아이처럼 위축되겠지.
영영 깊어가기만 할 것 같은 밤을 보내게 되겠지.
자고 일어나면 아침일 테니까 잠에나 들자. 생각하며 자리에 들겠지.
지난해 초겨울 어느 날의 메모였다.
빠진 것이 있다. 아직 해가 서너 발은 남아 있어 잡초 뽑고 또 뽑고 이곳저곳 물 주는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시작되는 그 라디오 프로그램이 어느새 두 시간이나 진행되어 다른 프로그램 시작되기 전에 들어가자는 생각으로 서둘러 호미를 씻고 호스를 걷게 되는 여름날 저녁들을 떠올리는 일이다.
나는 그러니까 겨울만 되면 여름을 떠올린다. 정원 이곳저곳에서 그 라디오 프로그램을 거의 다 듣고 일을 마치는 그 넉넉한 여름날 오후들을 그리워한다.
그 그리움은 그렇지만 겨울 저녁만의 것은 아니다.
여름날에는 여름날대로 이번에는 실내 이곳저곳을 서성거리며 라디오를 듣는 한가로운 겨울저녁들을 그리워한다.
어둑어둑한 바깥을 그대로 두기 싫어 커튼을 내리고, 그 커튼을 헤쳐 세상으로 나가는 길 건너편 산비탈의 골프장 불빛을 내다보기도 하는 그 쓸쓸한 저녁들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은 그렇다.
겨울저녁에는 여름날 해거름을 그리워하고, 그 겨울이 지나 여름이 되면 이번에는 또 지난겨울 그 서글픈 저녁들을 그리워하는 것이니 나로부터 떠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처럼 자꾸자꾸 멀어져 가는 지난 계절들을 그리워하며 지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사계'라는 제목으로 1월부터 12월까지 아예 각각 다른 음악을 부친 차이코프스키의 정서는 헤아려볼 길 없이 촘촘하다. 그런 걸 섬세하다고 하는 것일까? 자꾸 다가온 만큼 자꾸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생각하면, 그 그리움들을 사진 촬영하듯 붙잡아 둔 예술가의 의도를 짐작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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