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그건 아주 오래된 말, 아이들이 처음 배운 단어 중 하나였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무심히 내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나 자주 쓰이는 흔한 말이다. 그 말은 생 자크 거리의 음습한 지하주택을 가리킬 수도 있었다. 또한 생 탕투안 거리의 더러운 건물 꼭대기에 있는 후덥지근하고 갑갑한 방 세 칸짜리 집을 가리킬 수도 있었다. 우리 집, 그 단어는 아주 유연하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들에게 우리 집은 특정한 한 장소가 아니라 이 변두리에 흩어져 있는 스무 군데 남짓한 장소들을 의미했으니까. 그 말에는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언제나 일말의 불확실성이 담겨 있었다. 그 말은 연례적인 이사의 한 부분이요, 계절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일종의 도피처럼 급작스러운 출발처럼 마음을 울리는 말...... 그 말을 들을 때면 기억 저편에서 철새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소설 《싸구려 행복》(가브리엘 루아)의 이 장면에서 내가 거쳐온 집들을 떠올렸다.
나에게는 단 한 집도 마음 편하게 지낸 집, 지금까지 아늑하게 느껴지는 집은 없었다.
얼마나 누추하고 미안한 일인가.
그걸 다시 겪어야 할 혹독한 누추함과 갚을 길 없는 미안함 때문에라도 나는 다시 태어나는 걸 가상하거나 내생을 이야기하는 걸 싫어한다.
너무 더운 여름철이고 뭐고 구석진 셋방으로 아버지가 찾아오시면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그땐 왜 외식 같은 게 없었지? 외식은 나에게만 없는 일이었나?) 나는 이불 대신 깔개가 될 만한 물건을 몇 가지 찾아들고 아버지에게 그 셋집 옥상으로 올라가자고 했고, 그렇게 숨통을 트는 나에게 아내는 매우 고마워했다. 고마워할 일도 아닌 걸 고마워한 아내는 잠시 그 옥상에 올라와서 살펴보고 내려가기도 했다.
종일 햇볕에 달구어진 옥상의 시멘트 바닥은 얼른 식지 않았다.
깔개도 얇았지만 밤이 이슥하도록 등이 뜨거웠다.
우리는 늘 두어 명은 데리고 다닌 내 동생들, 세 명의 내 아이들과 함께 최소한 여덟 명의 3대가 거기에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라디오를 듣다가 하며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 고생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
나중에 잘 살게 된 동생들을 떠올리며 자부심을 느꼈다. '웬 자부심?' 생각했겠지?
그렇게 지낸 동생들이나 그 위의 동생들이나 아무도 그런 나를 위로해주지 않았다. 그런 고생 같은 건 이제 엿이나 먹어야 할 일이 되었겠지.
나는 그런 기억들을 수없이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하랴.
그걸 이야기하는 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조용히 가지고 가야 할 기억이라는 걸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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