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사람들이 먹고 입는 것까지 간섭한 적이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어디 가거든 일찍 다니라고, 술을 마셔 취했더라도, 사랑을 속삭이고 사랑을 나누다가도 소정의 시간이 되면 집에 들어가라고 채근하고, 심지어 생각하는 것조차 단속하기까지 했다.
되돌아보는 것조차 싫다.
나는 당시에는 사는 건 본래 이런 건가 보다 했다. 싫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인 줄 알았고 처자식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더러 반기를 드는 사람이 언론에 비치면 걱정스러웠다. 왜 저럴까? 두렵지도 않나? 저렇게 하면서 생활은 괜찮을까?
내심 나도 싫다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성향을 의심하기도 했다. 대통령을 이상적인 인간상의 정점에 둔다면 나는 중간이라기보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인간상 쪽에 가까울 것 같아서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할 경우가 없기를 빌었다. '아무래도 나는 좀 이상한, 비정상인 사람이 분명해.'
나는 이제 여든이 넘었다.
그런데도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참고, 쓸데없는 말은 안심하고 많이 지껄인다. 아내는 '왜 실없이 저럴까?' 한다.
사실은 지금도 그날들을 떠올리며 '싫다!'를 되뇐다.
지금까지 이러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한다.
먹는 것, 입는 것, 어디로 이동하는 것, 사랑을 나누는 것, 머리칼 자르는 것, 물건 사는 것, 술을 고르는 것... 마침내 생각하는 것까지 다 간섭한 그 일들을 쓸데없이, 수없이 떠올린다.
이 회상은 죽어야 끝나지 싶다.
나는 개 훈련시키는 것조차 개의 생활을 간섭하는 것 같아서 싫다.
TV에 그런 장면이 나오면 마땅치 않다는 마음이 된다.
그 개가 먹고 입고 생각하는 것까지 움츠리던 나인 것 같은 느낌이 된다.

나는 브레닌(늑대)에게 꼭 필요한 것만 가르쳤다. 재주를 가르칠 필요는 전혀 못 느꼈다. 자기가 바닥에 뒹굴고 싶지 않은데 내가 왜 그것을 시켜야 하는가? 심지어 브레닌에게 바닥에 앉으라고 시킬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앉건 서건 그것은 브레닌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나란히 걷는 것은 이제 당연한 행동이 되었다. 꼭 알아야 할 것은 네 가지뿐이었다.
가! : 가서 냄새를 맡아.
멈춰! : 거기 서 있어.
이리 와! : 나한테 와.
그리고 다음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나가! : 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 있어.
나는 "철학자와 늑대"(마크 롤랜즈)를 읽으며 여러 번 흥분했다. 봐! 이 학자는 이렇게 했잖아! 늑대와 11년이나 살면서도 그랬잖아!
그 책에 빠져 읽던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 마음대로, 생각대로 하고 싶은 건 개도 늑대도 좋아하는 덕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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