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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원길 시인의 말> '덤'에 대하여

by 답설재 2026. 3. 15.

작가가 자기 작품에 대해 자랑하거나 변호하는 글을 쓰면 자칫 독자의 감상의 자유와 재미에 간여하는 수가 있어서 조심해야 되는 줄 알고 있다. 하나 수많은 평론가들의 비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저자와의 대화”, “자작시 해설”을 선호한다. 어쩌면 평론도 가급적 저자를 인터뷰하고 나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제 아무리 전문 평론가라 할지라도 저자의 깊은 속내를 다 알아맞히기는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는 독자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여기 시집 표제 “덤”은 시인의 나이 팔십 이후에 쓴 이삭 줍기 시란 뜻이다. 마지막 시집을 내는 걸로 본격적인 시업은 마쳤으나 시의 샘이 간헐적으로 솟아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또 시집을 엮어 내게 된 것이다. 그것도 무려 33편이나 된다. 1974년에 낸 첫 시집이 33편이었으니 우연치곤 재미있다.

 

시집 제목 ‘덤’과 달리 작품 ‘덤’의 스토리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정신이 있는 한

팔십에도 문득 깨닫고

반성하고 깨닫고

고칠 수 있다.

 

이제까지 온 길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올라

내려다 볼 수 있다.

 

땅에선 볼 수 없는 것 더 보려고

오르다가, 오르다가 점이 되었다가

먼지처럼 멀어져선 사라지는 것이다.

나이 먹을수록 더, 더 멀리

더, 더 높이 갈 수 있다.

그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움 없는 데로 사라지는 것이다.

 

(졸시 ‘덤’ 전문)

 

 

장수시대를 사는 화자의 인생 말년은 어때야 하나? 늙었다고 한탄하고 체념하여 멈추지 말고 더 높은 정신의 고양을 위해 한 층, 한 층 더 올라가잔다(갱상일층루更上一層樓), 백리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에겐 구십 리가 반(욕행백리자구십리위반欲行百里者九十里爲半)이라는 마음으로 오르고 또 오르되 마침내 저 도연명과 이퇴계처럼 승화귀진乘化歸盡(자연의 조화에 목숨을 맡기다)하기로 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 시를 아주 쉬운 단어와 구절들로 한달음에 썼다. 노익장의 기분이랄까, 늙어서도 수행자의 정신활동을 접지 않고 이어가겠다는 다짐의 시라 하겠다. 작년(2025년초)에 쓴 시이다. 그런데 갑자기 올해 원단에 마지막 한 행을 추가하였다. 원래 마지막 줄은 “그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런데 내게 질문이 생겼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나는 답했다. “가는 게 아니라 없어진단 말이다.” 죽음 뒤에 가는 곳이 있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거긴 영혼도 마음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그리움도 없는 곳, 아무런 의식이 없는 데로 사라져 없어진다. 그래서 “그리움 없는 데로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써넣었다. 그러곤 그것을 몇 군데 카톡으로 보냈다. 즉각 동양학자, 문인들로부터 반응이 왔다. ‘좋았다’ ‘달관’ ‘수능지차誰能至此’ 등.

 

여느 종교처럼 천국이나 지옥 같은 내생으로 가거나 환생이나 부활 같이 거듭 나는 게 아니라 그냥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죽음 그 자체로 끝이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보아 화자는 무신론자이고 유자儒者(유교인)인 것 같다. 그리움이란 사랑(愛)과 슬픔(哀)에서 유래하는 감정이다. 모든 생명체의 본성이자 인간의 원초적 감정이다. 그 또한 번뇌인 것이다. ‘그리움 없는 곳’이란 인간의 원초적 감정도 없는 곳이란 뜻이 되니 이는 한없이 고요한 유계幽界이며 대안정의 상태인 것이다. 고요하면 됐지 다시 더 무엇을 구할 것인가! 부하구혜復何求兮. 퇴계 자명自銘의 끝구가 떠오른다. 인생 말년의 깨달음을 덤으로 얻은 것이다.

 

 

 

의성산불로 사라져버린, 김원길 시인의 지례예술촌(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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