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둑에 사는
미루나무
이십 년 모은 재산
까치둥지 하나.
반짝이던 잎새
다 어디 가고
긴긴 겨울에
빈 하늘뿐.

유종호 문학평론집《시와 말과 사회사》에서 이 동시를 봤다. 향토색 짙은 《관촌수필》을 쓴 그 이문구 작가의 동시여서 잊히지 않았고, 내가 어릴 때 본 것은 미루나무뿐이어서도 잊히지 않았다.
여름날 대낮이나 가을의 해거름, 동네 앞 논둑에서 볼 수 있는 건 미루나무뿐이었고, 그 미루나무 잎사귀들은 바람에 끝없이 팔랑거리기도 하고 햇빛을 받는 동안에는 반짝이기도 했다. 반짝이면서 팔랑거렸다. 그 미루나무 잎사귀를 따라 올려다보면 푸르른 하늘.
그 하늘까지 올려다보면서 나는 옆은 보지 않아서 세상의 굴곡을 알지 못했다.
알았더라면 좋았을지 모르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주 높은 건 미루나무일 뿐이었다.
나중에 그 미루나무가 팔려가는 걸 보게 되었다. 헐값에 그 미루나무를 사 가는 사람으로부터 성냥알을 만든다는 말을 전해 듣고, 미루나무가 겨우 성냥알이 되는 걸 한탄했다. 나머지 미루나무들도 결국 성냥알이 되는 신세라는 것이 가슴아팠다.
나는 세상의 구조에 너무 어두웠다.
지금도 나는 어둡다.
긴긴 겨울에도 미루나무를 바라본 이문구 작가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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