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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가마귀 ᄡᅡ호ᄂᆞᆫ 골에

by 답설재 2026. 1. 2.

국민학교 6학년 때 우리 담임(成百洙) 선생님은 음악은 전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하루의 수업을 마칠 때마다 모두 일어서서 꼭 시조 한 수를 읊게 했다.

시조를 읊는다고 해서 국악을 가르친 건 아니고 아주 간단한 악보에 맞추어 삼장(三章)으로 평시조를 노래하게 했다.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지나도록 일 년 내내 그렇게 했으므로 나는 지금도 그 악보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아침에 우리 아파트를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깍깍거리는 까마귀 소리가 들리면 나는 곧 책상에 두 손을 짚고 서서 시조를 읊어대던 그날들을 떠올리곤 한다.

백로가(白鷺歌)도 우리가 애창한 시조 중 한 편이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강에 기껏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나무위키'를 봤더니 '백로가'는 여말선초(麗末鮮初) 시기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어머니 영천 이씨(永川李氏)가 지은 시조라면서 다음과 같은 원문을 보여주었다.

 

 

가마귀 ᄡᅡ호ᄂᆞᆫ 골에 白鷺(백로)야 가지 마라

셩낸 가마귀 흰 빗ᄎᆞᆯ 새올셰라

淸江(청강)에 잇것 시슨 몸을 더러일가 ᄒᆞ노라

 

 

우리가 이 원문대로 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 앞의 것이었나?

모르겠다. 지나가고 나면 모든 것이 다 희미해지는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어쨌든 나는 까마귀가 싫다. 그 시조를 읊으며 까마귀를 싫어하기 시작했을까?

그러면 나는 백로처럼 살았나? 그건 아니다. 그렇게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가 까치를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吉鳥)로 여겨 친숙해하듯 까마귀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그렇다면 생각하기 나름이고, 까마귀도 친숙하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인가?

아무래도 내게 그건 어려운 요청이 될 것 같다.

저렇게 극성스레 깍깍거리는 새를 어떻게 길조로 여길까?

게다가 요즘 이 아파트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것들은 변종인지, 아니면 토종인데도 못된 인간들을 따라 우악스러워졌는지 예전보다 훨씬 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극성스럽게 깍깍거리는 것 같고 흡사 성격이 고약한 사람이 무법천지에서 고성방가를 하는 양으로 들리기도 한다.

 

모두들 이렇게 모여 살아서 그렇지, 인구가 줄어 빈 집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예측대로 이웃 보기가 어려운 날이 오고, 그런 날 저렇게 울어댄다면 나는 까마귀 때문에 여기는 도저히 못 살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까마귀들이 내 이 글을 보면 그럴 것 같다.

 

까마귀 A : 저 인간 좀 봐라! 우리가 싫다네?

까마귀 B : 하기야 인간들이 좋아하는 동물이 드물긴 하지.

까마귀 C : 맞아! 쇠고기를 그렇게 좋아라 하면서도 소들이 방귀 많이 뀐다고, 공기오염 주범이니 뭐니 하며 저희들은 천사인양 제 잘못은 모르는 것들이니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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