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선경 산문 《내 꿈에 가끔만 놀러와》
문학동네 2025
이 산문집을 (노인이) 산책하듯 읽기로 했었다.
수채화 전시회를 구경하게 된 즐거움 같은 것도 느꼈다. 60년쯤 전 회화 담당 교수 연구실에서 본 수채화 소품들, 그 충격을 잊은 적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나는 언젠가 수채화를 해보기로 했고 지금도 생각 중이다), 내게 남은 책들(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 볼륨이 큰 것들이어서 시인의 산문집마저 그런 중압감을 줄 리는 없을 것 같은, 좀 들뜬 느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그렇게 시작하길 잘했다.
시인은 그 산책과 다른 느낌, 그 수채화와 전혀 다른 충격을 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같은 곳에서 와서 같은 길을 걷고, 그렇게 살다가 결국 같은 곳으로 가는 것으로 여긴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다.
시인은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
같은 곳에서 와서 같은 곳으로 갈 수는 있다. 같은 길을 걷는 건 아니라는 건 분명하고, 나는 이 분명한 것을 지금 깨달았다.
이 시인이 가고 있는 길은 내 길과 전혀 다르고, 그래서 그 생소함이 좋고, 내가 얼른 그쪽으로 가고 싶어서였을까, 오히려 익숙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 1
나는 이 시대의 젊음을 모른다.
예를 들면 시인이 신인 걸그룹 KiiiKiii 데뷔 프로젝트에 참여한(참여해 달라고 부탁을 받을 수 있는) 일 같은 것이다.
KiiiKiii의 "I DO ME"를 듣는다.
이제 화면을 바라보지 않아도 그 흐름이 들리고 마침내 익숙해졌다.
어째서 이 노래를 여러 번 들을 수 있었을까.
"I DO ME" ☞ https://youtu.be/hAEfi_SKTEU?si=O5t3ZbbWNje62LAv
# 2
우리가 같은 길을 걷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건 왜 필요한가.
그러면 교육도 다르게 할 수 있다. "이리 와!" "이것 봐!" "그러지 마!"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이걸 해야 돼!" "거길 가야 돼!"......
우리가 같은 곳에서 와서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곳으로 간다는 생각으로 하는 교육은 어떤 아이들을 망치는 교육일 수도 있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 장 그르니에는 이렇게 썼다(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
나는 내가 맡은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다는 점보다는 오히려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에게 애착을 갖게 되었다.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
시인은 KiiiKiii 데뷔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야기의 제목을 '실은 열쇠 따위 필요하지도 않다'고 붙였다.
우리 교육은 똑같은 열쇠를 하나씩 만들어주려고 한다.
시인의 이야기에 내가 덧붙일 것은 없다.
# 3
지난해 1월, 나의 이 블로그가 쓰레기통 같다는 걸, 이제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암담하다는 걸 느끼게 한 그 시인이다.
2024년 1월 "현대문학"에 시인의 이런 글을 보고서였다.
2021년도에 만든 나의 블로그 이름은 '분리수거 연습'이다. 별명은 '비생물'. 자기소개란에는 '별명을 비대면 체온 측정기라고 지을까 고민했다'라고 적혀 있다. 모두 처음 블로그를 개설할 때 설정한 그대로다. 글을 올리는 카테고리는 세 개로 나눴는데, 각각 '종량제 봉투'와 '폐수' '재활용'이라고 이름 지었다. '종량제 봉투'에는 일기를, '폐수'에는 시를, '재활용'에는 나에게 영향을 준 음악이나 영화, 책을 올렸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구분이 모호해져서 카테고리를 모두 닫아버렸다(카테고리 자체를 비공개로 전환한 것). 그리고 '일기'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었다. 지금은 '일기' 카테고리만 전체 공개인 상태다. 그곳에 새 개시글을 올리면 이전 개시글은 비공개 처리한다. 어차피 내 블로그를 꾸준히 보러 오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지만 한번 방문했을 때 단 하나의 일기를 읽는 것과 누적된 일기를 줄줄이 읽는 것은 다르니까. 아무래도 후자는 한꺼번에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을 테고 나는 그것이 무섭다.
# 4
이 책을 소개해준 내 불친 정바름님의 우정에 감사드린다.
내 불친은 지금 열공 중인 고딩이어서 귀찮게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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