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이먼이 아내에게 발각된 얘기를 정부(情婦) 리호에게 전하는 장면
사이먼(힐다의 남편, 리호의 정부情夫)이 고개를 천천히 흔들면서 말했다.
"얼마나 끔찍한 기분이었는지 자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야."
사이먼은 그때 힐다(사이먼의 아내)가 입을 굳게 다물고 접시에 담긴 미트로프를 가만히 응시하는 것만으로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장악했다고, 그러고도 남았고 그 이상의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식탁 밑으로 떨어트린 포크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젠가 드러그 스토어에서 열 개 묶음으로 팔던 포크였는데 부엌 바닥에 떨어지면서 이때껏 포크가 낼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한 굉장한 소리를 냈고, 사이먼은 허리를 숙여 그 포크를 집어 올린 다음 힐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혹은 그렇게 들리기를 바라면서.
"정말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힐다는 고개를 들어 사이먼보다 멀리 있는 어떤 것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사이먼을 통과해 지나가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사이먼은 한동안 힐다의 시선을 견디다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식어버린 콘수프와 반으로 자른 까만 올리브와 접시에 묻은 토마토케첩과 노란 오렌지 주스 같은 것들로.
잠시 후에 힐다가 말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해? 정말 그렇게 생각해?"
힐다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하고…… 죽은 물고기처럼 차가웠다. 사이먼은 힐다가 언제 그런 목소리를 내었는지─그랬던 적이 있기나 한지─곱씹었다. 자루에 집어넣은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물건을 찾을 때 그러듯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언성을 높이거나 소리를 지른 적은 있었지만 목소리가 죽은 물고기 같다고 느낀 적은, 거스르거나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차갑다고 느낀 적은 사이먼이 기억하는 한 없었다.
"내 남편이 다른 여자랑 자는데 그걸 어떻게 모를 수 있어."(55~56)
# 사이먼이 정부 리호에게 하소연(협박)하는 장면
"일이 그렇게 된 거야. 내가 끔찍한 짓을 저질렀고, 힐다가 그걸 알았고, 그래서 더 이상 집에 머물 수 없게 된 거라고."
그 후 두 달 동안 사이먼은 몇 곳의 호텔을 돌아다니며 지냈다고 했다. 깨끗하게 잘 마른 수건이 늘 화장실 벽걸이에 걸려 있고 침대 시트가 아무도 그 침대에 누운 적 없는 것처럼 반듯하게 깔려 있는 객실에서. 하지만 아무리 좋은 호텔도 집 같진 않아. 전혀 그렇지 않지. 어떻게 호텔이 집 같을 수 있겠어. 사이먼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시간을 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자기랑 그러지 않았으면 제일 좋았겠지."
사이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매일 그 생각을 해. 회사에서도, 거리에서도, 신호를 기다리며 앞차의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바라볼 때도, 객실 침대에 누워서 천장 벽지를 응시할 때도, 바에 앉아 술을 마실 때도, 바에서 그럴 수 없을 때까지 그러다가 다시 객실 침대에 누워 천장 벽지를 바라볼 때도 그 생각을 해."(58~50)
# 사이먼이 리호의 남편 매슈에게 그간의 일들을 털어놓는 장면
매슈(리호의 남편)는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했다. 리호가 있는 곳에서는 그래 보였다. 생각해보면 매슈는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앉아 조용히 우는 사람이었다. 그게 매슈가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틀어박혀서 혼자 해결하는 것, 그럴 수 없을 때면 매슈는 그럴 수 있을 때까지 평소의 모습을 가장하며 기다렸다. 리호가 아는 매슈는 그랬다. 완고해 보이는 뒤통수와 빳빳하게 굳은 목덜미와 작게 떨리기 시작한 어깨와……. 매슈는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아직 그럴 힘이 남아 있다고 믿는 것같이 보였다.
리호는 사이먼의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을, 열렸다 닫히며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말을 쏟아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말들이 바꾸어놓을 것들을 생각했다. 사이먼의 말이 불러들일 것과 앗아갈 것들을. 예전에는 한 번도 그런 식을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을. 리호는 생각하고 또 했다.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지금과 같은 것은 하나도 남지 않을 거라고.(62)
................................................
두 쌍의 부부, 네 명 중 한 명도 가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끔찍한 것으로,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듯 세상에 처음 있는 신비로운 일인 양 새로 또 새로 생산해서 얼마든지 있는 일로 만든다.
불륜은 어디서 오나? 끝이 없는 그 호기심.
인간은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지만 한없이 비참해질 수도 있다. 한때 반짝이는 듯했던 저 남녀.
소설은 친절하다. 네 사람이 장차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다 읽었고, 읽고 나니까 더 알고 싶은 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쓸데없는 문장은 단 한 마디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이야기꾼의 프로필이 있다.
강태식 2012년 〈한겨레문학상〉 등단. 소설집 『영원히 빌리의 것』. 중편소설 『두 얼굴의 사나이』. 장편소설 『굿바이 동물원』『리의 별』. 〈한겨레문학상〉〈황산벌청년문학상〉〈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
'책 보기의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0인의 동시집 《눈사람나라 뉴스》 (1) (6) | 2025.09.28 |
|---|---|
| 고선경 산문 《내 꿈에 가끔만 놀러와》 (15) | 2025.09.14 |
| 류병숙 동시집 《모래알이 쫑알쫑알》 (12) | 2025.09.07 |
| 윌리엄 트레버 《그 시절의 연인들》 (4) | 2025.08.15 |
| 흑인 여성 인턴이 수술의들에게 한방 먹인 이야기 (6) | 2025.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