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1
여백, 2013
1947년생 오경아는 인형처럼 예쁘다. 밝고 낙천적이지만 외로움을 잘 탄다.
혼자인 것을 잊기 위해 아이처럼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여인, 그러다가 울고 금방 또 웃는 여인, 혼자 있기가 싫어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싶어 하는 여인, 불행한 사람이나 생명 있는 것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여인,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며 무엇이든 모아놓는 여인......
열아홉 살 그녀를 농락한 사내가 있었고, 후처로 삼은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들은 경아가 술에 익숙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세상을 버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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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50여 년 전, 1973년에 읽은 나는 이렇게 멀쩡하게 남아 있지만 경아는 나 같은 사내들 때문에 이미 그때 세상을 떠났다.
나는 왜 이미 사라진 그녀가 궁금해 다시 이 소설을 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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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가 수면제 과용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경찰은 그녀의 연고를 찾지 못했고, 1969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동거생활을 한 대학 미술강사 김문오(33)가 형사의 전화를 받았다. 눈 내리는 날 아침이었고, 헤어진 지 3년 만이었다.
경아는 대학 1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회사 경리로 취직했고 그 회사 영석의 눈에 띈다.
남자 경험이 없는,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경아는 영석의 감언이설과 회유, 협박을 이기지 못해 몸 주고 마음 주고 마침내 사랑에 빠져버렸지만, 가짜 의사에게 중절수술까지 시킨 영석은 사랑은커녕 불장난에 지나지 않아서 달랑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종적을 감춘다.
실의에 빠졌던 경아는, 상처(喪妻)를 하고 딸과 함께 지내는 사업가 만준을 만나 또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그 결혼은 정상이 아니었다. 집안 곳곳에 전처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만준은 여덟 살 딸이 짧은 옷을 입지 못하게 했고 경아가 그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전처는 의처증을 가진 이 인간의 잔인한 학대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사실이 드러난다.
경아는 술과 수면제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아이를 가져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집념으로 마침내 상상임신을 하게 되는데, 산부인과 의사는 경아가 임신한 경험이 있었다는 사실을 만준에게 알려줌으로써 그들의 부부관계는 무너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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