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동교육대학(2년제)을 나왔다. '선생'이 되려고 그 학교에 간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입시에 실패했고 한 해 동안 낭인처럼 떠돌다가 학비가 거의 안 들더라는 친구를 따라간 것이었다.
그러니 공부를 할 리가 없었다. 2년간 그냥 지내기만 했다.
졸업하고 발령을 받았더니 아이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며 졸졸 따라다녔고, 사범학교(고등학교)를 나온 교장 이하 여러 선생님들이 교육대학을 나온 정규 교사라고, 말하자면 '고급'의 교사라고 우대해 주는 걸 보고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교육에 관한 책을 새로 구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읽었고, 그러다 보니 좀 알게 되었고, 다른 4년제 사범대학에 편입해서 공부를 더 했고, 대학원이라는 곳에 가서 공부해보기도 했다.
나중에는 교육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기도 했는데 그게 영광스러운 일이었다면 그건 나에게 "선생님!" "선생님!" 하고 따라다닌 첫해의 그 아이들 덕분이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진취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고 현실적응형이다.
소설 "별들의 고향"(최인호, 1973)에 나오는 오경아처럼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둘 뿐이다. 즐거운 일이 있어도 얼른 웃지 않고 그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며 즐거움을 자제한다. 새 옷에 붙은 고급의 끈 같은 건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었다가 열쇠 고리를 만드는 식이다. 평생 이 모양으로 살아왔다. 말하자면 최선의 경우를 찾지 못하는 못난이고, 좋게 말하면 남을 후려치기는커녕 당하지나 않아야 하는데 하며 살아간다.
그 최악을 벗어나려고 혹은 면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언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으면 결코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가지는 않는다. 최악으로 살았던 자리를 뭐 하려고 다시 찾아가 보겠는가.
나를 떠올리며 혹 '그가 다시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안동교육대학에서는 정훈희의 안개가 세상을 뒤덮는 걸 봤다. 그 밤에 한국 1세대 현대무용가 김상규 교수와 둘이서 포장마차를 찾아가 몇 번 참새구이를 안주로 정종을 마신 적도 있다. 그는 외로웠다. 시청 앞 로터리의 장미가 여름에 피어 서리 내리는 늦가을까지 그대로 있는 것도 봤다. 두봉 주교가 있는 성당 옆 야산에는 매일 소가 매여 앉아 있었고, 그 야산 아카시아꽃이 만발한 그늘 아래 하릴없이 앉아 멍 때리기도 했고 밤에는 김복진 형네 중앙약국 2층에서 Georges Jouvin의 트럼펫 "메아쿨파"를 들었다.
학교에 가서는 공부를 하기 싫은 친구를 찾아 그럴듯한 일을 하는 데 집중했다. 그중 한 가지가 '명륜춘추(明倫春秋)'라는 교지 창간이었는데 9년 후 후배들이 학교가 없어지게 되어 이 교지도 종간호를 내게 되었다면서 원고를 부탁했다.
50년이 다 되어가는 날에 쓴 글이어서 부끄럽지만 그대로 옮겨썼다. 고쳐서 뭘 하겠나 싶었다.
글 속의 R은 처음부터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오래 전에 저승으로 가버린 내 친구 연우(蓮雨)다. 정말 그가 그립다. 누가 이름을 '연잎에 내리는 비'라고 지었을까 자주 생각났었다.
□ 이것이 마지막이라네
R!
글쎄, 이것이 마지막이라네.
우리가 그때 연앤가 뭔가를 할 즈음 하숙집에서나 아니면 곧장 하숙집으로 직행하지 않고 비 내리는 늦은 밤, 그것도 부족해서 길가 어느 대폿집에 도중하차해서는,
"어이, 만나러 가기 전엔 뭐 그리 할 말이 많을 것 같던지, 조목조목 수첩에라도 적어 가고 싶기까지 했지만, 막상 만나고 나선 죄 없는 담배만 축내며 묻는 말에 '응, 응.' 대답만 하고 말았다네."
하던, 어디론가들 사라져 버린 우리의 그 말이 생각난다고?
글쎄, 나도 그렇다니까 그러네.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우리는 무슨 말을 누구와 어떻게 하여 이 시간, 이 자리를 메울 수 있단 말인가!
明倫春秋, 이름부터가 이게 뭔가 말일세. 10년이 지난 지금사 내 까놓고 얘기네만, 난 그때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가 생각해 낸 이름 중에선 '낙동강'이 젤 그럴듯하다고 얼마나 역설했는지 자네는 알고 있을 걸세. 낙동강, 우리의 어머니, 어머니의 치맛폭 같은 표정의 그 물결, 끝없는 포옹을 우리가 나가지 않았던 밤에도, 그가 만들어 놓은 벌판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래알들에 남겨 놓고 흘러가던 정다운 그 낙동강......
'명륜춘추'라 이름 짓자고 고집한 분은 벌써 10호쯤으로 끝날 운명을 예언한 거라고?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거라고? 에이, 이 사람아, 그런 말이 어디 있나? 그렇게 애착심 없는 말을 한다면 나도 한마디 하세. 낙동강은 10년이 지났는데도 왜 흐르고 있는가? 남의 속도 모르고 왜 흐르는가? 왜 흐르고 있는가!
그럼, 주제에 창간호 편집위원장이라고 날뛰던 네 잘못은 없느냐고? 어허, 이 사람 이제 못할 말이 없네. 그래, 그야 뭐 말할 것 있나? 자네들이 원고를 쓰고는 이름만 이 사람 저 사람 끌어다 붙인 경우도 더러는 있었고, 거의 모든 원고를 다시 정서했으며, 편집 기간조차 길어 얼얼하도록 재미있고 한가해야 할 방학을 짜장면으로 얼룩지게 했으니 (뭐 또 더 있겠지만) 왜 내 잘못인들 없겠나?
그렇지만 생각해 보게. 학생회 간부들끼리 옥신각신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자네는 아는가? 못할 말로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붉은 얼굴로 서무과에 들어가
"책만은 올해 내야 하겠습니다!"
하고 굵게 시작하다가 운동장으로 끌려 나왔던 그 일을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었나?
"사람이 그래서는 안 되네. 화를 낸다고만 일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살아보면 아네. 사람은 김치처럼 삭아야 제맛이 난다네. 먼저 독 속에 들어가 배춧잎이 제일 밑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로 익어 있다는 것 아는가?"
말하자면 나는 그때 서무과 직원으로부터 김치 철학 강의를 들었다는 얘길세. 결국 일이야 얽힌 실 풀리듯 풀리기 시작했지. 그 며칠 전 몇몇이 수박을 사가지고 모 교수님 댁에 들렸다가 드디어
"그렇다면 모르겠네. 자네들 깜양대로 해보게. 사람은 깜양이 있어야 사람이긴 하지."
하신 말씀을 들은 것이 힘이 되긴 했지만.
그러나 당초에는 예산도 수립되지 않은 걸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천신만고로 승낙을 받고는 아무렇게나 묶어 내놓을 수 있었겠나? 편집비 10,155원, 인쇄비 172,260원, 220페이지의 책이었다네. 그래도 내가 신경질을 부리며 일한 건 변명할 수 없을 거라고? 야 이 사람 이젠 정말 웃기네. 그것만은 덮어주게.
□ 톱밥을 태워 만들던 말
아주머니, 아무래도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요사이도 아주머니 댁 하숙생들은 별을 보며 들어가는지요? 까짓 거 내버려 두십시오. 그것도 한때입니다. 대문은 건성으로 잠가 두시고 저녁밥도 식거나 말거나로 생각하십시오. 제발 이불이라도 좀 개도록 이야기해 달라고요? 허, 참, 아주머니도. 그냥 두시라니까요? 아주머닌 그때도 너무 신경을 쓰셨다니까 그러시네요. 이것도 저것도 다 버려두세요. 단, 아침에 문 열어젖히고 깨워 주시는 건 계속하셔도 좋습니다.
참, 아주머니, 자주 드나들던 사람들은 다 무엇하느냐고 묻고 싶으신 거지요? 원고진가 뭔가를 들고 다니던 시원찮은 사람들. 아주머니, 그래도 그들은 지금은 사라져 간 저 학보사의 옛 톱밥 난로 곁에서 한없는 대화를 나누며 인정으로 세월을 보내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새벽달처럼 은밀하고도 풋풋한 사랑도, 무엇이었던가? 다람쥐 쳇바퀴처럼 바쁜 시간에도, 얼음 위에 맨살을 대고 앉아서라도 바둑 한 판만은 두고 가야겠다던 어느 친구의 참 지나친 정열도, 한 개비 담배가 없으면서도 그처럼 털어 박혀 있던 여름철 비지땀 같은 한 녀석의 나태도,...... 요컨대, 우리들 그 시절의 모든 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학보사의 톱밥 난로와 더불어 상기되는 것이, 아주머니, 아름다웠던 것인지 다 그렇고 그런 것이었는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할 일이겠지요.
톱밥 난로, 아주머니, 만약 손톱만 한 톱밥 난로가 있어 우리가 그것 양복 깃의 어디쯤에 마스코트로 달고 살아왔던들, 우리는 지금 인정도 묻어 둔 채 이곳저곳 소식조차 알 수 없어 서로서로가 버림받고 있진 않을 것입니다. 하기야 톱밥 난로 마스코트가 없어도 모일 사람은 모이고 있으며, 쓰고 싶은 사람은 쓰고 있지만, 아주머니, 이젠 어디 석유스토브나 하다못해 연탄난로라도 피워 놓고 또 모여들어 웃고 웃는 날들을 단 하루라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이제 교대생 하숙생이 없으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요? 글쎄, 전들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 변하지 않는 건 애들뿐
교수님!
이 후배 좀 보십시오. 발령을 받지 못해 쩔쩔맬 때 참 어처구니없이 초라해 보이더니, 이제 제법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후배들 얘긴 그만두고 저도 이젠 어쩔 수 없는 놈이 되었다고요? 에치 참 교수님도. 선배님 후배님 보고 계시는데 그러시면 저희들 체면이 뭐가 됩니까? 모든 것 다 아시면서도 그러시네요. 변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합니까? 변하지 않고 태어나는 건 아이들 뿐인데......
그래도 교수님, 10년, 그 10년, 얼마나 눈물겹도록 저희들은 아이들 속으로 빨려 들었습니까? 아이들 속으로, 아이들 속으로......
혹은 심심산골 외로운 곳에서, 망망한 바닷가에서, 비 내리는 변두리의 말 못 하게 헙수룩한 주막집에서, 아~ 그랬지요. 지금도 그러고 있지요. 때로는 소주와 막걸리를 마구 퍼마셨어도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입, 우리의 눈, 우리의 귀, 손, 발, 허리, 그리고 우리의 가슴..., 우리의 눈물, 우리의 웃음, 우리의 진실, 우리의 사랑, 우리의 청춘까지도...... 그리하여 모든 것 다하여 아이들과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찬양하리 무명의 교사를
위대한 장군은 전쟁을 이겨도
싸움터에 이긴 자는 무명의 병사일세
이름난 교육자는 제도를 고치나
어린것을 손잡고 이끄는 자 무명의 교사일세
공명을 멀리하고 고난과 싸워가며
승리의 나팔도 태워 줄 꽃가마도
달아 줄 훈장도 그를 위해선 하나도 없는데
어둠을 지키고 무지와의 싸움을 그는 치르네
지금은 사라져 버린 교문 바로 안, 휘영청 수양버들 아래에서 우리가 날아나가는 푸른 공간을 향해 그렇게 외쳐주던 그 '無名의 敎師像'은 그러니까 '네가 그들과 같게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들을 너와 같게 하려고는 하지 말지니라.'라고 한 저 카아릴 지브란의 말처럼, 우리를 나이 든 아이들로 만들어버린 것이겠지요. 초라하게들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 아니면 그 누구도 가려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그 누구도 갈 수 없는 이 길을 자랑스럽게 가고 있음을 찬양하여 울지 않게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교수님!
저희들에게 더는 묻지 마십시오. 어떻게 지내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다 묻더라도 교수님만은 부디 물어보시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한 잔 술이, 아니면 스러져가는 저 저녁놀이, 아니면 지고 또 지는 꽃잎 나뭇잎들이 하다못해 저희들을 향한 세상의 같잖은 비난이나 보이지 않는 멸시와 간섭이, 이보다 천 배 만 배 더 저희들을 때린다 해도, 저희들은 아이들과 같게 되려고 애쓰며 그들을 지키고 손잡아 이끌며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가슴까지 적시지는 않을 테니까요.
□ 나이의 냄새
R.
이제 '명륜춘추' 창간호나 좀 들여다보세, 응?
아니 이게 무슨 냄새인가? 이건 시험공부하는 중고등 학생이나 빽빽이 들어박힌 그 도서관 진열장의 한 귀퉁이에서 한 번도 빼어 본 사람 없이 10년쯤 지난 그런 책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가? 우리가 그때 그 고본서점에서 그 왜 무슨 월간지 창간호를 발견하고는 코에 대어 보았을 때의 바로 그 냄새가 아닌가 말일세. 어허, 그 참 10년이 지났다는 걸 이 책의 냄새가 알려주는군.
그러고 보니 야 이 사람, 자네 몸에서나 내 몸에서나 아이들이 날려댄 비눗방울 냄새나 아이들이 문질러댄 크레파스 냄새가 솔솔 나겠네 그려.
우리가 모처럼 만나서 우리의 얘기나 좀 더 소상히 할 걸 괜히 딴전만 피워 시간 다 보냈군. 하기야 우리의 그때 그 자리를 이제 다시 마련하지 못할 바에야 뭐 별 수 있을까만은 시원치가 않군, 시원치가 않아! 아무리 지껄여대도 이놈의 펜은 우리의 심정을 다 보여주진 못한단 말씀이야. 도대체 말을 들어먹어야 하지, 이놈의 펜이.
에이, 형편없는 녀석! 그래, 이깐 얘기밖에 못 받아 적겠더냐? 야, 인마! 던져져라! 저 멀리!
(명륜춘추 창간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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