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뒤적이다가 이 풍경을 발견했다.
아파트 앞 슈퍼에 다녀오던 저녁이었다.
'치토스'와 '빼빼로'를 두 봉씩 샀다.
당연히(!) 한 봉씩 사려고 갔었다.
그런데 치토스가 두 가지이고 빼빼로는 몇 가지인지 세기도 어려웠는 굳이 셀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변화의 신기함에 황홀했고, 갈등을 느꼈다.
'최소한'이라고 여기며 두 가지씩만 샀다.
그걸 들고 돌아오는데 저 앞에 퇴근하는 사람이 보였다.
문득 그렇게 퇴근하며 지내던 서글프고 춥고 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야근을 하면 그 서글픔, 썰렁함 같은 감정들이 훨씬 더했다.
때로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이 나라에 이 직급의 이 일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므로 그 서글픔, 썰렁함 같은 것들을 당장 물리치곤 했다.
일요일 포함해서 집에서 저녁식사하는 것이 한 달에 두세 번밖에 안 되는 달도 있었고, 그럴 때 아내는 뭘 먹고 싶은지 묻기도 했다.
'나에게도 저런 날들이 무수히 있었는데...'
그 사내를 부러워하며 뒤따르고 있었다.
그 서글프고, 썰렁하고, 춥던 날들이 그리웠다.
이번엔 그날들의 내가 지금의 나를 서글프고 썰렁하게 느낀 것이다.
나는 좀 억울하게 그때나 지금이나 늘 서글프고 썰렁하고 추운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와서 사가지고 온 것들을 내놓았다.
아내는 혀를 찼다.
그러면서 저러니 돈을 모으지 못했다고도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왔지만 돈을 왜 모으지 않았겠는가?
그동안 좋은 것들은 아니지만 뭘로 먹고 입고 했겠는가?
집을 두 채 사지도 않았거니와 여름·겨울별 구두를 두 켤레씩 사거나 (아주 정신이 없을 때 말고는) 같은 책을 두 권씩 사거나 하진 않았잖은가?
그렇긴 하지만 아내의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하등의 죄도 없는 순진무구한 사람이, 그 아리따웠던, 산딸기 같았던 그 시골 처녀가 몇 가지 감언이설에 속아 나를 믿고 따라와서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왔으니 나로서는 할 말이 없어야 당연할 것이다.
그까짓 하찮은 치토스, 빼빼로 각 두 봉에 혀를 차느냐고 항의를 하면 나는 인간도 아닐 것이다.
뭐가 됐든 두 배로 사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행히 아내는 더 언급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딱 한마디로 더 이상 말이 없는 게 나는 또 미안했다.
쓸쓸해져서 책을 펼쳤다. 거창하게도 "우리를 둘러싼 바다"란 책이었다.
지난해 12월 23일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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