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국무총리로 퇴임한 지 사흘째였을 때 신문기사를 모은 스크랩북을 가지고 학교로 찾아갔다.
그는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하지? 내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있나?'
그렇게 허접한 연구실은 처음이었다. 먼지가 쌓여 있을 것 같았다.
'총장이었는데... 총장이 되기 전에 쓰던 연구실이겠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일부러 찾아오시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스크랩북을 내놓았다.
"이걸 일일이 모았습니까?"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기사는 어느 신문 칼럼이었다. 노태우 정부 말기, 정국이 들끓을 때였고 국무총리에 대한 비판도 있었는데 "국무총리가 무슨 잘못을 했나, 단 5개월 한시적인 마지막 총리로 임명된 노학자를 대놓고 비판하면 안 된다, 정치적으로 속상하다고 해서 그분이 노하게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내용이었다.
"이 칼럼 못 보셨지요?"
"예...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나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연구위원으로 근무할 때 그 단체 회장으로 선임된 그를 만났고,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할 때 하용도 사무총장이 정민표 연구위원과 나에게 수행해 달라고 부탁해서 며칠간 숙식을 함께했다.
첫날 아침, 우리는 도봉구 쌍문동으로 그를 찾아갔다.
초라한 기와집이었다. 뭐 이런 데 사나 싶었다. 기와를 인 담장이 쓰러질 듯했고, 마루와 방은 바닥이 고르지도 않았다.
그는 부엌에 있던 부인을 불러 소개하고 양해를 구했다. '이 사람이 늙고 혼자 있기 싫어해서 동행하고 싶어 하니 양해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전에 도착해서 행사 전에 점심식사부터 했는데, 식당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부인에게 양해를 구했다.
"우리는 방에 들어가 점심을 먹으며 상의할 일이 있으니(사실은 그렇지도 않았다) 당신은 홀에서 식사하면 좋겠소."
그 요청은 우리가 말려서 될 일이 아니었고, 전국 순회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그 일들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경이롭게 느꼈다.
그는 이후 국무총리를 거쳐 오랫동안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 등의 직책을 맡았다.
만날 때마다 인상적이었다. 한 번은 북한산 입구에서 만났는데 그는 '혼자'였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허름한 복장이었다.
'무리'를 이끌고 다니지 않고 그렇게 '혼자'였다. 나는 공연히 미안했다.
그는 101세가 된 5월의 봄날, 세상을 떠났다. 나는 당시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김포공항 가는 길 옆 어느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그 요양원은 괜찮은 곳이라는 것만 확인했었다. 그 마지막도 또 혼자였었나 싶었는데 그건 내 느낌일 뿐이었다.
그는 평안남도 개천 사람이었다.
이제 내 이야기다.
101세...
그는 더 살면 좋았을까?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럼 내가 지금으로부터 한 20년 더 살면 어떻게 될까? 그건 의미가 있는 일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습지만, 누가 나더러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주장할 사람도 없고, 어디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이러다가 이번에 죽는 건 아닐까 당장 두려워하긴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조금 더 산다고 무슨 수가 나는 건 아니다. 새해라고 여동생이 건강 잘 보살피라고, 오래오래 살아계시라고 했고, (저 위에서 함께 연구위원이었다고 소개한) 정민표 군은 "우리 악착같이 살아보세. 아하하....." 해서 "그럼, 그럼......" 하긴 했지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지금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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