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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조용필 "꿈"

by 답설재 2024. 12. 25.

유튜브 soya i : 조용필 - 꿈(1993)에서 캡처.

 

 

 

한창 일할 때는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일을 마음에 두고(그 일이 뭔가를 나는 밝힐 수 없다) '나중에 시간 있을 때 한번 해봐야지!' 했었다. 그때는 심지어 '1주일만 주면서 하고 싶은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면 책이라도 한 권 쓰겠다'고 장담을 했었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정말 그렇다고도 했지만 빙그레 웃기도 했다.

왜 웃었을까?

'책은 무슨...' 하고 비웃었을 수도 있고, 자신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이니 어쩔 수 없어 미소를 지었을 수도 있다.

 

나이가 일흔 가까워지면서 나는 정서적으로 메말라 가는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메말라 가는구나! 아, 이미 거의 다 말랐구나!

뿌리가 있는 나무는 그 가지가 결코 메마르지 않는다. 뿌리가 드러나버리면 나뭇가지는 이내 푸석푸석해지고 만다. 내가 그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여든이 된 나는, 내 정서는, 메마르고 말았다.

정서적인 일은 하지 못하게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조용필의 '꿈'을 '즐겨찾기'해 놓고 듣는다. 유튜브를 보는 것이니 듣는다기보다 '감상한다'가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감상한다고 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 말일 것 같기도 하다.

그 노래를 부른 가수는 여러 명이고, 조용필이 부른 '꿈'을 녹화한 유튜브도 여러 가지여서 시간이 있을 땐 여러 가지 버전을 들어보지만 조용필의 그 노래는 명곡(명창?)이라는 걸 실감하곤 한다.

 

내가 주로 듣는 건 조용필이 거의 울면서 부른 노래다. 그는 그 노래를 1993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불렀다.

1993년, 그 해는 내가 3년간의 파견근무를 마치고 교육부 편수국에 발령을 받은 해다. 서울역 쪽에서 광화문을 향해 올라가면 숭례문을 지나게 되고, 광화문 광장에 이르러 이순신 장군 동상과 정부종합청사(지금의 서울청사) 건물에 이르게 된다.

나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볼 때마다 눈물겨웠고, 그 청사에서 청춘의 고비를 넘겼다. 야근을 할 때마다 그 거리를 내다보았고,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조용필이 울면서 노래를 부르는 그 화면을 바라보며 내 청춘, 내 잃어버린 고향을 떠올리는 건 아니다.

누가 그걸 되찾아주겠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나는 단호하게 거절할 것이다.

나는 다만 '노래는 이렇게 부르는 것이구나... 꿈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을 설명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여름 가뭄 때의 실개천처럼 메말라버린 내 정서를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한다는 말을 덧붙일 것이다.

 

 

'꿈' ☞ https://youtu.be/zpz4zYFYjZo?si=yvh5fjda-on1SKj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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