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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섭섭한 성탄절

by 답설재 2024. 12. 20.

 

 

 

다음 주 수요일이 성탄절이다.

나는 그동안 기독교도도 아니면서 성탄절을 즐거워하는 것에 굳이 드러내고 싶지는 않은 미묘한 갈등을 느껴왔다.

'이래도 되나?'

'남들이 비웃지 않을까?'

'언젠가는 믿음을 가지게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곧 교회에 나갈 작정인지 물으면 어떻게 하지?'...

 

핑계 같은 것도 있다.

'나만 이렇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누구누구인지 찾아보라면 난처하긴 하지만 어디 한둘일까?'

'그런 걸 보면 우리 사회는 엉망인 걸까? 종교적으로는 아무런 질서도 없는 사회일까?'...

 

모르겠다. 이런 것 아니어도 갈등을 느끼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

그러다가  《사람들이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가이 해리슨)라는 책을 읽었고, 그 책에서 드러내놓고 성탄절을 즐겨도 좋겠다 싶게 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발견했다.

 

 

나의 뮤직 플레이어에는 지금도 몇 개의 찬송가들이 저장되어 있다. 나는 이 노래들이 우주의 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노래들이 나의 기분을 좋게 해 주기 때문에 나는 평소에 이것을 즐겨 듣는다. 나는 내가 종교를 경멸하지 않고 무신론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머지않아 신앙이나 무신론 양쪽 모두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자기들의 종교적인 전통을 즐기는 '문화적 기독교도'나 '문화적 이슬람교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찾아오면 나는 운전할 때마다 《그 어린 주 예수Away in a Manger》 같은 캐럴을 크게 틀어 놓는다.

 

 

이 문장들을 읽으며 '문화적 기독교도'의 한 사람이 분명한 가이 해리슨을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너무 늦게 읽었다.

이제 성탄절이라고 해서 케이크를 사가지고 들어올 필요가 없어진 지 오래다. 아이들에게 무슨 선물을 사 줄 일도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거리에는 캐럴이 들려오지 않는다.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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