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세수하고 얼굴을 닦다가 입 주변과 아래턱이 눈에 들어와 새삼스럽게 놀라웠다.
나는 언제 이렇게 쪼글쪼글해졌나?
내 속에는 아직 어린아이가 들어 있어 때로 고개를 내민다. 그럴 땐 언제라도 이 사람들과 헤어져 그 아이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싶은 느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쪼글쪼글해져서 돌아간들 사람들이 알아보기나 하겠나?
언제 내가 팔십 살을 먹었나?
계산 착오가 아닐까? 열 살 스무 살은 그렇다 치고 서른마흔쉰을 지나 예순일흔에 나는 어디에서 뭘 했나? 그때의 나는 어떤 나였나? 증거가 있나? 어디에 그 증거가 있나?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어떤 조치부터 해야 할까?
누가 나더러 나이만 먹었지 무엇 하나 의젓한 게 없지 않냐고 하면 지금까지의 한심한 행위, 바보 같은 행위를 '일시에'(어제 그제 단 며칠 만에) 고쳐버렸다고 하면 될까?
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가 한꺼번에 대충 이루어져 버리더라고 할까?
에잇! 그러면 뭘 하나!
이렇게 쪼글쪼글해진 게 나다!
팔십 년을 오며 한 시간 한 시간, 내가 지각하는 일들을 방관(혹은 낙관)하고, 더러는 선택도 했지만 대개는 해찰해 버린 그것들이 쌓여서 이 주름을 이룬 것이다.
그러니 벌써부터 생겨서 점점 더 그 크기를 넓혀온 이 검버섯, 이 흉한 몰골을 레이저 수술로 감춘다고 해서 사라질 리도 없다.
그래, 지금까지 포기해 온 것처럼 이번엔 이 주름을 포기하자.
포기하면 그만이다. 다 포기하면 된다.
가자!
조금만 더 가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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