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만물박사가 사라진 것에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시대가 특정한 업무, 가령 역청의 보관이나 배에 화물을 선적하는 컨베이어의 건설 같은 업무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장인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슬픔이 좀 덜어질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인체의 간 효소의 활동만 연구하는 의대 교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나 또는 세상의 학자들 가운데 수백 명은 오로지 프랑크족 역사 중에서도 메로빙거 왕조 후기만 연구하면서 그 결과를 튀빙겐 대학 인문학부에서 발간하는 학술 정기간행물 《중세 고고학》에 발표한다는 사실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알랭 드 보통이 쓴《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읽었다(23~24).
그런 전문가들을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고? 무슨 위로?
고색창연한 연구실에 들어앉아서 세월 가는 줄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여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는 나는 꽤 괜찮은 것 아닌가 싶은 느낌?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알랭 드 보통의 견해에 대부분 즐겁게 동의하지만, 그래서 그의 책 읽기를 즐기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그런 전문가들을 생각하면 아, 그 세월에 난 뭘 했나 싶다.
전공과목조차 없는 초등학교 교사는 '만물박사'일수록 좋다. 그렇긴 하지만 정작 세상에 대해서는 한심할 정도로 모른다. 나는 양말 한 켤레 값이 10,000원이라고 하면 '그렇구나' 했고 1,000원이라고 하면 또 '그렇구나' 하며 살았다. 그게 그 당시에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저 바보!'
나는 아이들만 잘 가르치고 싶었지만 요즘은 디자인 전문가의 손에 맡겨지는 환경 조성도 잘한다는 말을 들었고, 심지어 교문이나 학교 건물 지붕 위에 크게 써붙이는 "주체성이 강한 한국인 육성" 같은 간판도 썼다. 행정실이 없던 그 시절에는 경리 업무도 맡은 적이 있었고, 학교 일이라면 온갖 걸 다 했다. 나중에는 교육논문 쓰기로도 이름을 날렸다. 물론 술자리도 피하지 않았다. 그런 일들은 어쩔 수가 없어서 한 것들이지만 성취감이 없지 않았고, 윗분들 칭찬에도 약했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처럼 이것저것 교육계 혹은 학교교육의 온갖 일에 다 접근하고 싶고 알고 싶어 하는 교사들을 보면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은 걸 참는다. '훼방 놓는구나' '뭐 이런 늙은이가 다 있나'...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에게 그렇게 충고하거나 독려한 선배는 세 사람이었고, 나도 처음에는 '이 사람이 나에게 심술을 부리나?' 싶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애정과 안내로 교육부 편수관으로 들어가 오랫동안(한시적으로) 전문가 대우를 받았다. 나는 그분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지금도 그 선배들만은 존경하지만 고마움에 답하지는 못하고 있다.
나는 전문가들을 존경한다. 그들을 부러워한다.
정치 전문가는 싫다. 싫어서 미안하다. 괜찮다고? 그렇다면 다행이다. 사업 전문가들도 굳이 부럽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집 어느 부분에서 고장 신호가 왔을 때 당장 달려와 나사 하나만 갈아 끼우면 감쪽같이 잘 돌아가게 하는 A/S 기사는 부럽다. 음료수 한 병을 고맙게 받는 그 기사들을 나는 매번 부러워한다.
나도 이런 사람이었으면 싶었다.
전문가의 세상이다.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간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알랭 드 보통이 그 책 제목을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정한 것에는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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