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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다치바나 다카시 《사색기행》

by 답설재 2024. 10. 18.

다치바나 다카시 《사색기행》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5

 

 

 

 

 

 

2005년에 이 책을 사놓았다. 그러니까 20년을 함께했는데도 더러 등표지만 바라보며 지나쳤고, 마침내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그 등표지의 작은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게 되어 '立花隆' 세 글자와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된 '사색기행'만 눈에 들어왔다.

일전에는 읽지 않은 책들을 구분해 보며 생각했다. '立花隆? 중국인인가? 사색기행? 무슨 사색?'

그러다가 선뜻 '이 책을 읽자!' 용기(?)를 내었다.

돋보기를 쓰니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아, 이런! 그렇다면 이건 다치바나 다카시잖아!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사색기행? 사색하지 않은 기행문은 읽을 가치도 없겠지? 지금은 "김○○의 세계여행" 시대가 아니니까. 옛 국어 교과서에 한 편씩 구색을 맞추어 실리던 그런 기행문이라면 블로그에도 수없이 많으니까. 식상해할까 봐 '思索'을 붙였나? 희대의 저널리스트, 일본의 탐사보도 선구자, 박학다식의 대명사는 어떤 사색을 했는지 읽어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겠지?

그는 이렇게 시작했다(83~84).

 

여행기의 고전적인 체제를 답습한 여행기는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 이는 스턴과 동시대인이며 일본의 가장 뛰어난 여행기 작기이기도 한 마쓰오 바쇼가 이미 피력한 바 있다.

"대저 여행기라는 것은, 기노 쓰라유키紀貫之, 가모 조메이長明, 아부쓰니阿佛尼(비구니 아부쓰) 들이 지극한 문장으로 정취를 읊은 뒤로는 모든 여행기의 문장이 다 비슷해져서, 흉내만 낼뿐 새로운 점이 없다. 하물며 나같이 자식이 짧고 재주가 없는 사람의 붓이 어찌 그에 미칠까. 그날은 비가 내리고, 낮부터 개이고, 저기에 소나무가 있고, 어디에 무슨 강이 흐르고 하는 따위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이니, 황기소신黃奇蘇新(중국 시인 황산곡의 진기함과 소동파의 참신함)이 없고서야 새삼 무슨 글을 또 쓰랴. (...)"

"그날은 비가 내리고, 낮부터 개이고, 저기에 소나무가 있고, 어디에 무슨 강이 흐르고" 하는 따위의 글은 쓸모없는 것이니 더 이상 쓰자 않는 편이 낫겠다. 마음에 남은 아름다운 풍경이라든지, 여행 도중에 겪은 고생담 같은 것도 모두 이야깃거리가 되리라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줄줄이 쓰고 말지만, 그런 것도 모두 술에 취해서 떠벌이는 객담이나 잠자는 이의 잠꼬대와 다를 바 없으니 새겨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판에 박힌 기행문처럼 하찮은 것도 없다는 말이 되겠다. (...)

 

 

이런 얘기들이다.

 

세계 인식은 여행에서 시작된다(서론)

1. 무인도의 사색 (무인도에서 보낸 엿새, 몽골 '개기일식' 체험)

2. '가르강튀아 풍'의 폭음폭식 여행 ('가르강튀아 풍'의 폭음폭식 여행, 프랑스의 암반 깊은 곳에서, 유럽 치즈 여행)

3. 기독교 예술 체험 (신을 위한 음악, 신의 왕국 이구아스 기행)

4. 유럽으로 반핵 무전여행을 떠나다

5. 팔레스타인 보고 (팔레스타인 보고, '독점 특종 - 텔아비브 사건', 미국 여론을 바꾼 팔레스타인 보도, 자폭 테러 연구)

6. 뉴욕 연구 (뉴욕 1981, AIDS의 황야를 가다)

 

 

위에서 다치바나 다카시는 "하물며 나같이 자식이 짧고 재주가 없는 사람의 붓이 어찌 그에 미칠까"라고 했다.

그건 아무래도 거짓말이다. 그런 지식욕, 필력은 드물 것이 확실하다. 그야말로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그 자신의 이야기가 발견되었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조직인 알카에다가 일으킨 9·11 테러(September 11 attacks) 사건'(나무위키) 때 쓴 글이다(411).

 

 

지난 2주 동안 그렇게 미디어 보도를 추적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생각들을 지금부터 써나갈 생각이다.

나는 저 사건 자체보다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쓰고 싶다. 몇몇 사람이 벌써 지적하고 있듯이, 저 사건을 경계로 세계는 확실히 변했다. 그 변화에 대해 쓰고 싶다. 세계는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지, 미국에 대하여, 세계에 대하여, 국가에 대하여, 정치에 대하여, 경제에 대하여, 종교에 대하여,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하여, 테러에 대하여, 전쟁에 대하여, 미디어에 대하여.

이야기는 얼마든지 늘려 나갈 수 있고 쓰고 싶은 것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눈앞에 마감 날짜가 가로막고 있으니 아무래도 제한된 주제를 '뛰면서 생각하는' 식으로밖에는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언제 만나도 좋은, 그렇지만 매우 바쁘게 살아가는 친구 같은 그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는 죽었다.

(1940.5.28~202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