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안 와?"
어느 사서가 창턱에 어마어마하게 큰 책 한 권을 얹어 놓았고, 다른 사서는 그 위에 자그마한 화분 두어 개를 올려놓았다.
나는 저 창을 바라보면 볼일을 그만두고 도서관으로 직행하고 싶어진다.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사람이 책만으로는 살 수 없고 책에서 빵이 나오지도 않는다는 건 뻔한 일인데도 그렇다.
"그러니까 얼른 와."
방학이 다가오는 어느 날 행정실장을 불러 '받아쓰기'를 시키던 일이 떠오른다.
"실장님, 받아써 보십시오. '얘들아! 우리 학교 도서관에 좋은 책 많아. 그리고 참 시원해!' 다 썼습니까?"
"예, 교장선생님!"
"그걸로 현수막을 만들어 교문 위에 걸어주세요."
순간, 그분의 눈에는 내가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자랑스러웠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그런 현수막만 보이고, 한여름은 아직 독서의 계절도 아니어서 여름방학엔 그런 현수막을 내걸 이유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 여름, 우리 학교 도서관에는 날마다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과 교문을 들어서는 어머니들이 나를 보면 매혹적인 미소를 보냈다.
교장은 교장 할 일만 해도 일이 참 많은 직급인데, 어디 돈 나오는 구멍은 없나?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더 없나? 교직원들을 마음대로 휘두를 방법은 없나?......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면 교장 할 일은 제쳐두게 되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책 읽는 아이들, 책 읽는 엄마들을 보면 마치 내가 그렇게 만든 것 같은 느낌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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