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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조이스 캐럴 오츠 《미스터리 주식회사》

by 답설재 2024. 10. 22.

조이스 캐럴 오츠 《미스터리 주식회사》

배지은 옮김, 현대문학 2024년 10월호

 

 

 

 

 

 

 

맨해튼 4번 애비뉴의 서점들에서 좋은 책을 도둑질하는 데 스릴을 느끼며 책 도둑, 책 수집가, 책 애호가가 되어  그간 여섯 군데 서점을 연 찰스(가명, 본명은 미상)가 뉴 햄프셔 시브룩의 항구 위쪽 유서 깊은 하이 스트리트 구역에 자리 잡은 서점 '미스터리 주식회사'(신간 & 고서적·지도·지구의·예술품, 1912년 개업), 고색창연하고 아름다운, 보석과도 같은 전설적인 서점을 발견한다.

그는 독을 넣은 린트 초콜릿을 휴대하고 다닌다.

 

찰스는 서점 주인 에런 노이하우스를 죽이려고 한다. 매력적인 여 종업원을 그대로 채용할 생각도 하고, 아름다운 부인과 찍은 가족사진을 보고 질투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 부인까지 차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막 생각난 것처럼, 린트 초콜릿 상자를 서류 가방에서 꺼낸다. 상자는 뚜껑이 꼭 닫혀 있다. 에런 노이하우스에게 바로 얼마 전에 산 것이고 초콜릿이 빠짐없이 빼곡히 들어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솔직히 이 매혹적인 대화를 마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할 일이 있다.)

노이하우스는 즐거운 두려움을 드러내며 손으로 눈을 가렸다. "초콜릿 트러플...... 제가 좋아하는 트러플이라니! 정말 고맙습니다, 찰스. 하지만...... 이건 받으면 안 돼요. 나의 사랑하는 아내는 저녁상 앞에서 제가 배고파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서점 주인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누군가 부추겨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초콜릿 한 개 정도는 괜찮아요, 에런. 그리고 당신의 사랑하는 부인도 일부러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모를 거예요."

노이하우스는 소년처럼 탐욕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죄책감을 느끼는 표정으로 초콜릿 트러플 한 조각을 집는다(제일 첫 번째, 독을 넣은 줄에서). 그러고는 황홀한 얼굴로 초콜릿 냄새를 맡고 막 한 입 깨물려 한다. 그러다가, 자제의 미덕을 보여주려는 듯 초콜릿을 다시 내려놓는다. "그 말이 옳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알 필요가 없지요. 결혼 생활을 하며 배우자에게 알리지 않아도 될 것들이 제법 많습니다. 누구보다도 아내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그래도 가능하다면, 아내에게 좀 가져다주면 좋겠군요. 당신도 조금 챙기겠습니까, 찰스?"

 

 

이들의 대화는 이 서점의 내력으로 이어진다.

에런 노이하우스는 밀턴 래컴으로부터 인수받았는데 래컴은 아들에게 살해당했고, 래컴에게 서점을 넘긴 에이머스 슬레이터는 이 서점 지하실에서 자살한 바나바스 슬레이터의 손자로 그 자신도 결국 자살했다는 것이다.

노이하우스는 천연스럽게 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건 오히려 너무나 공포스러워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찰스는 마침내 두려움으로 부들부들 떨며 일어선다.

 

 

귀에서 소리가 울린다. 입안이 너무 건조해서, 뭘 삼키기가 불가능하다. 너무 추워서 이가 덜덜 떨리고 있다. 내 두 번째 카푸치노 잔은 조금 남은 우유 거품 말고는 비어 있다. 나는 잔을 노이하우스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손이 너무 떨려서 떨어뜨릴 뻔했다.

노이하우스는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자세히 살펴본다. 책상 위에 놓인 흑단 까마귀 조각도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 눈이 매우 예리하구나! 나는 몸을 떨고 있다. 난롯불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우 춥다. 턱에 붙인 턱수염만 아주 뜨겁게 느껴진다. 나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린트 초콜릿 트러플 상자가 나의 무기지만, 그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초콜릿 트러플 몇 개는 없어졌지만, 상자는 여전히 가득 차 있다. 초콜릿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내가 쫓겨났다는 건 알고 있다. 떠나야 한다. 때가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나 힘이 없고, 비현실적이 느낌이 든다. 서점 주인은 나를 사무실 밖까지 배웅하면서 상냥하게 중얼거린다. "가시는 겁니까, 찰스? 그래요, 많이 늦었죠. 언제라도 다시 오세요. (.....)"

 

 

나의 적(敵)도 이런 꼴이 되어 이렇게 물러나면 좋겠다. 《현대문학》 10월호 혹은 《해외문학명단편》에서 이 글을 읽은 이들, 내 블로그에서 이 짧은 독후감을 읽는 분들은 내 생각이 어떤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