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QqkkOoJ-28A?si=l6-pI-hG_YciY93L
라디오에서 이 음악이 들리면 나는 아득한 느낌이야. 넌 뭘 해, 그 시간에? 그 아득함은 실내로 들어와도 사라지지 않아서 뭘 해야 좋을지 몰라 서성거리곤 해. 여름엔 해가 지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하니까 잡초를 뽑든 뭘 하든 하던 일을 좀 더 할 수 있는 여유가 있긴 하지만 그 순간 아득해지는 건 마찬가지야. 한겨울엔 이미 날이 저물어서 그 아득함을 따라 창밖을 내다보게 되고, 이맘때의 가을엔 어둑어둑해지는 시각이야. 바쁘게 뒷정리를 하지 않으면 흙 묻은 호미와 장갑, 장화를 씻기도 어려워져. 오늘은 이미 상현달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어. 그곳도 그렇지? 가을이 며칠이나 더 계속될는지 초조해지고 그러다가 이 음악이 들려서 석양에 물들었던 서쪽 하늘에 잔영이라도 있나, 살펴보는 건 그리움의 정체를 찾는 일 같아. 그럴 때마다 생각들은 사소한 것들을 버리고 멀리 날아가지만 그래봤자 시들어버린 그리움일 뿐이야. 그 그리움은 습관으로 굳어져서 부피가 줄어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새 하나씩 하나씩 사라진 것일까? 이젠 그 정체를 적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아. 더는 줄어들 것 같지 않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그렇다고 그걸 물어볼 사람 하나 없는,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진 않은, 계산할 수는 없는 막연한 그리움, 너에게도 그런 그리움이 있니? 그렇게 살아가니? 그래서 종일 라디오를 듣고 마침내 저물어서 이 음악이 들려올 때가 있니? 내가 이 음악 들으며 아득해질 때 너도 그렇게 아득해질 때가 있니? 그럼 이게 약속이 된다면, 그 약속의 신호를 어떤 다른 음악으로 정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겠지? 이건 종일 라디오를 들었고, 이제 아득한 느낌의 저녁시간이 찾아와서 멀리든 가까이든 아무 데도 갈 수 없으므로 생각만 할 수밖에 없다는 그리움의 신호일 수 있으니까. 난 전화번호부를 마음먹고 정리할 작정이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그 '아는 사람' 중에 그 시각에 나처럼 아득해지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뭘 더 바랄 수 있겠니. 나에게는 누구에겐가 꼭 부탁해 놓을 것이 있어. 아득해진 그날들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였지. 그날부터 들어왔으니까 내가 떠나는 날에도 들을 수 있도록, 아파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라면 정신이 조금 돌아왔을 때라도, 잠시 들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이야. 그 시간에도 이 음악이 변함없는 시그널이 되어주면 좋을 것 같아. 나는 아득해져서 아득한 길을 떠나는구나 하겠지? 그럼, 안녕~~~ (10.12)
☞ https://youtu.be/QqkkOoJ-28A?si=Zhysgo4ZX_4E3nX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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