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선생님! 오늘은 좀 섭섭한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대체로 두 가지 안부를 전합니다. 우선 그저 그렇게 지낸다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회피하는 대답인가 싶어서 구체적으로 물으면 “학교야 늘 그렇지요. 변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상외의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진 않거든요” 하고 여유로운 관점을 보입니다. 만사는 여전(如前)하고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듯합니다.
순전히 짐작이지만 그런 학교는 교장도 느긋해서 1년 내내 큰소리 한번 하지 않고 이른바 학교공동체 구성원 간에 서로 부딪칠 일도 별로 없고 교장실에 교장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비바람이 몰아쳐도 야단스러운 꼴을 연출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건 우리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결코 그 교장이 결연한 태도로 어떤 경우에도 호들갑을 떨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습니다.
다른 한 가지 대답은 두 가지 내용입니다. “정신이 없다!” “학교는 너무나 달라져서 당신이 근무했을 그때의 얘기는 딴 나라 얘기가 되었다”는 반응입니다. J 선생님은 그중 한 분입니다.
“○○초 사건 이후 MZ 교사들에게는 선배들의 옛 이야기가 우리와 전혀 다른 세상, 멀고먼 별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너무도 달라져 버린 학교현장에서 이제 사제지간의 따스한 정 같은 건 찾아보기조차 어렵고, 선후배 사이의 교감도 많이 희미해졌다….” 이것이 J 선생님의 주장입니다.
J 선생님!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근무해보면 선배들의 무용담(武勇談)을 지겹도록 듣습니다. 온갖 어렵고 복잡한 일들을 용감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간 영웅들처럼 자신들의 일화를 들려줍니다. 후배들은 어떨까요? 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을 유례가 없었던 일들인 양 소개하고 온갖 그 어려움들을 새로운 지식으로, 새로운 관점으로, 자신들의 지혜로 뚫고 헤쳐 나가고 있음을 자랑합니다.
그 선배들, 그 후배들의 경험담은 사실은 우리가 겪은 일들과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그런 일들을 다 겪었고 다 처리했습니다. 더구나 그 무용담은 J 선생님이 이야기하시는 그 학교현장을 찾아가보면 그야말로 그들만의 무용담에 지나지 않습니다. 밤을 새워 일하고 갖가지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현장을 찾아가 설득하고 지원하고 한 일들이 과연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켰는지 의구심을 가질 때가 많았습니다.
학교는 여전히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기 때문이죠. 새롭게 마련한 정책과 제도로 몰라보게 달라졌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선생님 말씀에 따라 국어 시간에는 국어 교과서로 국어를 공부하고 체육 시간에는 열정적으로 던지고 받고 뛰고 달리고, 그렇게 네 시간을 공부하고 나면 즐거운 점심시간이고, 또 그렇게 한두 시간 더 공부한 뒤 학원이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학교의 그 변함없는 일과를 보며 안도감을 느낍니다. 시대와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괜찮을 것 같은 안도감입니다.
J 선생님! 아이들이 어떻게 변할 수 있습니까? 그 아이들이 돌연 선생님과 정을 나누기 싫다고들 합니까? 이른바 MZ 교사들은 세상의 변화에 배신감을 느꼈다면서 교원양성대학에서 배운 것들이 엉터리라고 매도합니까? 아이들의 그 호기심, 그 재잘거림이 귀엽거나 사랑스럽지 않답니까? 선배교사들의 자문과 조언을 거부합니까?
J 선생님! 학교는 영원히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저 아이들은 매일 아침 엄마아빠, 할아버지할머니들의 기원 속에서 싱그러운 얼굴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러 학교로 향할 것입니다. 물론 학교사회의 모습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학습은 개별화해서 이제 어떤 아이도 다른 아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공부하진 않습니다.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고 걱정하지만 그 또한 개별화를 돕고 앞당길 것입니다. 그 변화 속에서 우리의 학교는 더 따스한 곳, 정겨운 곳으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개별화의 길을 열어주면서 이 사회가 아늑하고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일로 영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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