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남들을 보고 또한 자신을 남에게 보이기 위해 서둘러 성당으로 갔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이탈리아')에서 이 문장을 봤다.
요즘 내가 밖에 나갈 때의 이유 중 반은 사람 구경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파트에서는 일단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내 호기심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가에 미친다. 하다못해 편의점에 다녀올 때도 그렇다. 누구를 만나도 만난다.
'만난다'? 구경한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그리고 그게 재미있다.
그 재미가 괜찮은 것이었는데 저 문장을 보고는 나 자신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물론 그들도 나를 슬쩍 쳐다보며 '저렇게 허접한 노인도 여기 사는구나' 하겠지만) 일방적·이기적으로 '사람구경'에 몰입한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구경하는 만큼 남에게 나를 구경시켜 주어야 마땅하다. 나는 그걸 전혀 모른 채 지낸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남들을 보고 또한 자신을 남에게 보이기 위해..."
그런 걸 보면 나는 별것도 아닌 것에서도 이기심을 발동하며 살아왔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나를 좀 구경시켜 주어야 하나?
그런데 누가 날 구경하고 싶어 할까?
나 자신도 늙은이 구경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까? 늙은이에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가는 사람들도 결코 젊은이보다 늙은이가 더 좋아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가 젊은이를 두고 늙은이를 바라보고 싶어 할까?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바로 그 글에서 이렇게 썼다.
'젊음, 중요한 것은 오직 젊음뿐, 나머지는 다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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