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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저 좀 착하게 해주십시오"

by 답설재 2024. 1. 17.

2014년 5월 6일에 써놓은 글입니다.

 

운보 김기창의「청산도」이야기에 덧붙여져 있었는데 지금 보고, 서로 어울리질 않는 두 가지 이야기를 붙여 놓은 바보짓을 발견했습니다. 김기창 화백이 본다 해도 그렇고 「청산도나 석가탄신일을 찾다가 보게 되는 이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 분명해서 따로 두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그 버릇 버리지 못했지만 나는 읽어줄 사람도 별로 없는 이 블로그에 작정하고 글을 쓰고 있고, 하나 쓴다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아서 일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석가탄신일입니다.

 

'이게 인간인가?' 싶어서 너무나 오랜만에 집에서 가까운 절을 찾아 부처님께 절을 올렸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절을 했는가 하면 '저 조금이라도 착한 마음 좀 갖도록 어떻게 해주십시오'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대웅보전 앞마당을 내려오는데, 저쪽에서 잘 차려입은 여성 두 명이 주지로 보이는 중의 양쪽 옆에 서서 누구에겐가 "떡은 회원들에게만 나누어주는 거예요!" 하고 큰 소리로 그건 당연하다는 듯 확인해주고 있었습니다.

 

회원들에게 나누어주고 남으면 법당에 모셔 놓은 그 무지무지하게 큰 세 부처님께서 밤중에 다 드시게 되는지, 아니면 회원 관리 잘한 그 꼴난 '간부'들이 실컷 먹고 남으면 썩혀서 거름을 만드는 것인지…….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회원'은 우선적으로 뽑혀서 저승으로 갈 수 있는 것인지, 아니 석가탄신일에 떡을 받아먹은 '회원'은 더 좋은 저승으로 가는 것인지, '간부'들이 그렇게 선처해 주는 것인지…….

 

전에 어느 허름한 절에 갔을 때는 부처님께 절을 올렸거나 말았거나 기웃거리는 사람들에게 모두 오셔서 밥을 드시라고 하고, 밥을 먹은 사람은 떡을 받아 가시라고 했는데, 그 절도 지금은 이 절처럼 각박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세상이 끝없이 삭막해지고,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이런 세상을 싫어하실 게 뻔한데도 왜들 그걸 모를까요?

 

'저 조금이라도 착한 마음 좀 갖도록 어떻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빌고 내려오며 당장 이런 못돼 먹은 생각을 해대었으니, 올 석가탄신일도 나는 결국 더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걸 실감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절에 가면 더 나쁜 인간이 되어버리니까, 앞으로 한동안 절 같은 곳을 찾지는 않을 것 같고, 정말 무슨 수를 내긴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이 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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