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겨울, 「샤갈의 마을」展이 열리고 있었다(2010.12.3~2011.3.27. 서울시립미술관).
그 겨울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약골이긴 하지만 병원에 간 적 없었는데 한꺼번에 무너져 아팠고, 41년 공직에서 퇴임을 했고, 그런데도 큰일들을 치러야 했다.
그런 중에도「샤갈의 마을」을 볼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샤갈이 그가 사랑한 러시아의 마을을 어떻게 그렸는지,「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김춘수)에 등장하는 그 아낙,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지피는 그 아낙', 혹은 「忍冬잎」(김춘수)에 나오는 저 '이루지 못한 꿈을 가진 인간'의 눈으로 구경할 수 있으면 싶은 마음으로 그림들을 보려고 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좀 소란스럽고 무질서했다.
우리는 이미 돈이 많은 나라니까 좀 소란스럽고 좀 무질서해도 교과서에서나 보던 그런 작품들을 지금이나 앞으로나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는 나라의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해야 할지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지, 이래도 괜찮을지, 의문이었다.
뒤따라오던 청년이 그의 친구에게 물었다.
"「샤갈의 마을」은 어디 있지?"
"응? 이미 지나간 것 같은데?"
"……"
여섯 개의 테마로 나뉜 전시장의 첫 번째 주제가 '나와 마을(러시아 시기)'이었다. 어디에도 '샤갈의 마을'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을 리 없었다. 그 첫 번째 주제의 어느 벽에는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멋지게 씌어 있긴 했다.
그의 시와 샤갈의 그림을 혼동한다 해도 큰일 날 일은 아니었다. 그 청년들이 부러웠다.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도 그렇지만 그림도 그랬다. 아름답고 재미있고 맑다. 해설이 필요하지 않았고, 골치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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