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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그림과 사진

지루한 수업

by 답설재 2022. 10. 6.

친구의 초상 1935, 62×50㎝,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저 유명한 시인 이상입니다. 화가 구본웅이 그렸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2013.10.29~2014.3.30)에서 봤습니다.

이 그림을 보고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에 옛 편수국의 구본웅 미술 편수관의 작품도 소개되었습니다. 「친구의 초상」. 이상(李箱)이 모델이었다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이용기 선생님은 뜻도 모를 오감도(烏瞰圖)를 자꾸 읽어 주셨습니다. 벌써 50년이 흘러갔습니다. 지금도 우리들 곁을 오락가락하시며 그 시를 읽어 주시던 선생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선생님! 그 이상 시인의 초상화를 문교부 구본웅 미술 편수관께서 그렸습니다. 저는 장차 교육부 편수관이 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때 그 국어 시간에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면, 선생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지…… 아니면 깜짝 놀라셨을지……

 

이용기 선생님은 저의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셨고 국어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문학을 좋아하시고 교과서를 사랑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이도 생각난 선생님입니다. 선생님들 숙직실에 들어가 바둑을 두다가 들켜서 교무실로 붙들려 갔는데 두어 시간 후에 오시더니,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개 패듯 하던 그 시절에 한 대도 때리지 않고 다짜고짜 "가! 이놈들아!" 하셨고, 친구들이 강요해서 먹었지만 구운 뱀을 삼켰다고 "야, 임마! 어쩌고 저쩌고..." 하셨고, 아직 졸업식도 하지 않았는데 시내에서 만나자고 하시더니 중국집 옆 술집에 들어가 추어탕과 막걸리를 사주셨고......

선생님을 만나고 헤어진 지 이미 60년이 다 되어갑니다.

 

도록에서 '구본웅' 화가를 찾아보았습니다.

 

<친구의 초상>은 구본웅의 친구인 시인 이상의 초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릴 적 부상으로 평생 꼽추로 살았던 그는 사회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식이 강했던 이상과 우정과 예술관을 공유하는 특별한 관계를 가졌다. (후략)

 

우리 선배 구본웅 편수관... 꼽추 편수관... 그리운 편수관...

편수관은 문교부(교육부)에서 교육과정을 정하고 교과서를 만들고 심사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내가 우리 편수관들을 지휘할 때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었다 해도 까마득한 최현배 선배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그 기라성 같은 우리 선배 편수관들의 일화를 소개해서 신념과 긍지를 갖게 해 줄 걸 그랬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때, 2014년 4월 2일, 이 블로그에 이 이야기를 자세히 썼을 때 콜로라도 주 덴버의 블로거 노루님이 이런 댓글을 써주었습니다.

 

어떤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 시간이 못 견디게 지루한 것은 15분이면 혼자 읽고

잘 이해할 내용을 선생님 혼자 50분간 중언부언하는 때문인 게 큰데

사회, 도덕, 역사, 그런 과목들이 더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사실, 저 지정학 얘기 읽으면서도 생각했던 것은,

이를테면 국어 (주당) 세 시간이면 한 시간은 '읽기와 쓰기'로 해서

일반교양 서적(사상, 세계 문화, 경제/지정학, 등)을 숙제로 읽어와서

수업시간에는 질의문답이나 발표 또는 15분간 짧은 에세이/보고서 쓰기,

그런 식으로 하면 효율적이고 학생들도 덜 지루할 텐데, 하는 거였지요.

 

학생 시절 임어당(린위탕)의 책에서 그가 제의하는 방법을 읽으면서 그랬으면 정말 좋겠구나 했던 게

또 생각나네요. 학생들은 수업시간 대신 읽을 책과 범위가 적힌 유인물만 갖고 학교 도서관에서

각자 읽고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고, 따로 질문 시간과 주기적인 - 저 같으면, 매일 마지막

시간에는 -- 시험이 있는, 그 비슷한 식이었지요.

 

교육이란 생각하면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 어쩌다가 우리 교육은 중요한 내용 간추려서 암기하고 복기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되었는지 실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백약이 무효인 이 병폐를 누가 바로 잡아 줄는지, 암담한 느낌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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