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단편적 지식주입식교육, 백약이 무효? (2022.12.30)

by 답설재 2022. 12. 30.

 

 

 

우리 교육의 수준을 평가해보자고 하면 뭐라고들 할까? 교육부 직원이라면? 서슴없이 세계적 수준임을 얘기하고 싶을 것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를 보여주면서 교육자라면 거의 누구나 부러워하는 핀란드와 수위를 다투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겠지.

 

그러면 핀란드 학생들은 오후 3시까지만 공부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11시까지 공부해야만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이 있다. 어느 해외 인사가 깜짝 놀라며 한국에선 세 시간만 공부하느냐고 문의한 일이 실제로 있었으니까 그 11시가 오후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객쩍은 소리지만 하루가 학생들에게도 공평하게 24시간일 뿐인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 분명하다. 시간이 더 허용된다면 학생들은 더 고달픈 세월을 보내야 하리라. 그들의 하루하루는 무한경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무슨 다양하고 유익한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학습 내용을 암기해서 5지 선다형 문제를 풀고 또 풀어 마침내 문제만 보면 기계처럼 풀어나갈 수 있는 기능훈련을 해 나가는 것이다.

 

‘수능 만능주의자’는 그런 문항으로 사고력이나 문제해결력, 창의력 같은 능력들까지 얼마든지 평가해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들 같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 EBS 수능방송 내용 중에서 일정량을 출제해서 학원에 다니지 않고 공부해도 충분하다는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고, 단 하루니까 수능시험 날에는 온 나라가 함께 조용히 해주면 된다. 그들도 그렇게 공부했고 그 방법으로 잘 살아가고 있으므로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가는 길의 정당성을 고수하고 싶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의 생활에는 거의 쓸데없는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공부란 무엇인가? 지식을 쌓는 일 아닌가? 그 지식을 다양한 활동(체험)을 통해 스스로 창출하고 발견하며 체득하는 힘을 기르는 곳이 학교가 아닌가? 그 지식은 당연히 설명을 들어 얻기도 하지만 그런 설명쯤이야 인공지능(AI)에게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학원에서도 학교에서도 간편하고 익숙한 방법이라고 해서 일방적·획일적 설명을 들어야만 한다면 굳이 그 설명을 경청해야 하겠는가.

 

좋은 교사는 부지런히 설명하는 교사이고, 좋은 학교란 수능시험과 관계가 먼 교과목엔 소홀하더라도 야간에도 방학에도 문제 풀이 훈련이나 시키는 학교라면 무엇 때문에 그런 교육을 지지해야 할까.

 

이러한 비판에 대한 해명이 불필요하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우리 교육과정은 미군정시대의 ‘교수요목’에서부터 학생들의 실생활과 연계하여 가르칠 것을 강조한 이래 그 교육과정을 바꿀 때마다 체험, 실험·실습 등 학생활동을 중시할 것을 강조해왔지만, 결과적·실제적으로는 그렇지 못해서 매번 실망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 사회부총리겸교육부장관도 에듀테크 기술 개발의 필요성·당위성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언급했다. “교실은 바뀌지 않았다” “수능시험에 맞추어 암기 위주 교육을 해왔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보조교사(AI)를 활용하면 이상적으론 교사 강의가 사라지고 교실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이처럼 수능시험 때문에 초중등학교 교실이 지식의 암기를 위한 강의 중심 수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시인하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인공지능이 보조교사로 등장한다고 해서 그 교실이 바뀔까? 주입식 암기 교육을 위한 설명식 수업이 사라질까? 교사들이 이제 수업 형태를 바꿔도 되겠다고 할까? 수능시험 대비를 해주지 않아도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 할까?

 

그 수능시험이 몇 년 내에 없어질 것이라는 기사를 봤는데 며칠 후 대입전형 근간은 손대지 않겠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혼란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정답일까? 암초를 그대로 둔 채 두고두고 고초를 겪어야 할까, 이참에 단안을 내려 행복한 교육을 기약하는 것이 옳을까? 당연한 일에 왜 망설일까?

 

교육부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교육개혁을 선언하면서 “오늘의 학생을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의 내일을 빼앗는 일”이라는 존 듀이의 말을 상기하고 있다.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