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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내 자식처럼 가르칠 수 있게 해주기 (2022.11.25)

by 답설재 2022. 11. 25.

 

 

“당신의 자녀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겠느냐?”는 직설적 질문이 있다. 그 순간 교사는 새로 출발해야 할 듯한 깨달음을 준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뭘 하고 있었지?’ ‘나는 언제 철이 들게 될까?’…)

 

이런 사례도 있다. 자신의 자녀는 책과 자료를 스스로 찾아 읽고 조사하고 학자처럼 궁리해서 결론을 제시하더라고 자랑하는 어느 교육학 전공 교수에게, 그럼 학생들에게도 일방적 주입식 강의를 그만두고 그렇게 대하고 가르칠 의향이 없는지 물었더니 그 아이는 사고력·탐구심이 출중한 경우이고 일반적으로는 고등학교 때까지 뭘 읽고 배웠는지 기초·기본 지식이 너무나 빈약해서 사고력, 자기 주도력 혹은 탐구심 같은 걸 이야기하는 건 사치에 지나지 않고 토론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런 관점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그 교재를 내 자식에게 주었을 때를 예상하게 되면 특별한 요청을 하지 않아도 핵심 전달 위주의 수업을 버리고 내용을 재구성하여 학생들의 사고와 활동을 중시하는 수업 방안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교사라면 그만한 소양쯤은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교사들은 지금 그렇게 할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썼다. “당파 간 투쟁으로부터 비켜서서 공평무사한 탐구 습관을 길러주고자 힘쓰는 것, 여러 현안을 스스로 판단하도록 이끄는 것, 일방적인 성명(聲明)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을 교사의 업무로 삼아야 한다!” 먼 나라 얘기라고 하겠지만 그는 이것도 강조했다. “교사는 시민들에게든 관료에게든 편견을 칭찬할 사람이 아니라고 여겨져야 한다!”

 

오늘도 학생들은 (그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책을 펴놓고 재미없는 강의를 들어야 하고 재미없는 내용을 죽어라 암기하고 재미없는 문제를 기계처럼 풀어대는 공부를 한다. 깊이 있는 사고나 흥미가 요구되지도 않는다. 어떤 것을 생각해야 하고 어떤 논의를 해봐야 하고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이미 다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건 아예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았나? 교사들은 왜 교과서에 의존하게 되었나? 어떻게 해서 기계적으로 내용을 설명해주고 암기하게 하고 문제 풀이에 집중하게 하는 방법을 고수하고 있나?

 

교사들은 수업에서만 소극적·수동적인 것도 아니다. 학생들 앞에 서면 주눅이 든다는 교사도 있다. 손발이 다 묶여있는 것 같다고 한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단다. 아이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우는 것도 잠시 교실 바깥으로 나가게 하는 것도 아동학대로 ‘걸리는’ 사례를 보면 저절로 소극적인 대처를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어서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하소연한다.

 

무엇을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일까? 가령 학교폭력 가해 학생 조치 기준을 보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는 폭력의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반성·화해 정도 등에 대해 각각 5단계로 0~4점을 부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서면사과, 접촉·협박 및 보복 행위 금지, 교내봉사 혹은 사회봉사,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 조치가 결정된다. 우리는 이 시스템(?)으로 학교에서 폭력이 사라지고 있는지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이 조치의 어떤 장면에서 교원의 전문성이 발휘되는지 궁금하다.

 

그런데도 교사들이 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소극적인 자구책이라도 찾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장차 어떤 것이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로 남게 될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왜 학원 강사들은 잘도 하는 조치를 교사들은 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행정은 정책 결정 순간에 교육의 전문성이 발휘될 여지가 그 정책의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교육의 전문성을 경시하고 교사들을 통제하는 행정은 이제 여기에서 중단해야 한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그들의 자녀처럼 대하고 가르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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