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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나 외로워!" '이 사람아, 사실은 나도 그래...'

by 답설재 2022. 11. 22.

 

 

#

 

TV 채널만큼 선택지가 많은 것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책?

글쎄...

 

아내가 자리에 없으면 돌연 마음이 좀 해이해지면서 그 채널을 3~5초, 길어봤자 10여초 만에 하나씩 다 돌려보고 싶어진다. 그동안 수없이 그래봤자 별 수 없었는데도 매번 '오늘은?' 싶어한다.

일단 0부터 50까지 올라가 보고 그다음에는 100부터 51까지 내려와 본다. 10분이면 충분하다.

0 아래로 내려가도 채널이 있고 100 위로 올라가도 많을 것 같지만 굳이 거기까지는 가보고 싶지도 않다.

 

 

#

 

반은 홈쇼핑이고 반은 가요, '먹방', 알고 보면 건강식품 이야기, 아주 혼을 빼앗기지만 보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오락(예능? 글쎄? 예능이라면 학교에선 음미체였는데?), 스포츠, 뉴스와 뉴스해설......

심각한 건 찾기 힘들고, 무슨 이야기일가 싶어서 잠시 머물러보면 웬만하면 일단 상황을 우습게 만들어버려서 깔깔 웃는 장면이 이어진다. 거의 모든 일을 누군가가 우습고 재미있게 해 버린다.

 

- 인생을 노래처럼, 삶을 요리처럼 혹은 오락처럼?

- 연예인들(?)은 그렇게 하라고 누군가(?) 돈을 주지만, 나는?(나는 노래도 요리도 오락도 아무것도 못하고 돈도 벌지 못하네?) 그럼 나에게는 TV 속 세상이 실없는 것 아닐까? 아니, 내가 실없는 인간이지?

- TV 속 사람들은 지금 그 상황이 심각한 것이겠지? 그들이 보기엔 내가 우습겠지?

- 그렇다면 이게 뭐지?

 

TV 시청 후의 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데도 TV 속의 세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게 도대체 뭐지?

 

 

#

 

나중에 그 장면이 떠올라서 '생각해보게 하는 장면'도 있다. TV를 열심히 본 덕분...

「SOLO」라는 프로그램을 지나가려다가 젊은 남성이 외치는 걸 보았다.

"나 ○○이야! 나 지금 외로워! 밥 먹으러 가자!"

아, 저런...

젊은 여성 두 명이 차례로 문을 열고 나왔다. 서로 쑥스러워하며 세 명이 나란히 섰다.

어?

다른 남성이 나타나 또 외쳤다.

"나 ○○이야! 나 지금 외로워! 밥 먹으러 가자!"

이번에도 젊은 여성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세 번째 젊은이도 나타나서 외쳤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외쳤는데 50보 100보였다.

"나 ○○이야! 나 지금 외로워! 이야기하러 가자!"

(이 상황과 외침은 정확한 건 아니다. 기억대로 썼다.) 

 

거기까지 보고 다른 채널을 찾았는데 지금 그 장면들이 생각났다.

- 방송국 사람들이 그렇게 외치라고 시켰겠지?

- 세 번째 젊은 남성은 왜 밥 먹으러 가자고 하지 않고 이야기하러 가자고 했을까?

- 방송국에서 시키는 대로 외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좀 바꿔서 외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 어떤 사람이 더 유능한 사람일까?

- 학생이었다면 시키는 대로 하는 학생이 더 좋은 대학을 다니게 되는 건 아닐까?

- 에라, 모르겠다!!!

 

 

#

 

다음에 아내가 자리에 없으면 이번에는 어떤 모험을 떠나볼까?

("사실은 나도 자주 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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