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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by 답설재 2022. 9. 3.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홍상희·박혜영 옮김, 책세상 2002

 

 

 

 

 

 

 

붓다가 아직 싯다르타 왕자였을 때이다. 부왕에 의해 화려한 궁궐 속에 갇혀 살던 그는 몇 번이나 거기서 빠져나와 마차를 타고 궁궐 부근을 산책하곤 했다. 첫 번째 궁 밖 나들이에서 그는 어떤 남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병들고 이는 다 빠지고 주름살투성이에 백발이 성성하며, 꼬부라진 허리로 지팡이에 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그 사람은, 떨리는 손을 내밀며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여댔다. 왕자가 깜짝 놀라자 마부는 싯다르타에게, 사람이 늙어 노인이 되면 그리 되노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싯다르타 왕자는 외쳤다.

"오, 불행이로다. 약하고 무지한 인간들은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자만심에 취하여 늙음을 보지 못하는구나.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놀이며 즐거움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의 내 안에 이미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도다."

이 책 시작 부분이다.

언제였는지 한번 읽기를 시도했었다. 서론의 서너 페이지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가령 이런 문장들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사망한'이라는 단어를 말소해버렸다. 대신 '가버린'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또 노년에 관계되는 말들을 회피한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늙음'은 역시 금지된 주제이다.

우리 사회는 노년을 마치 일종의 수치스러운 비밀처럼 여긴다. 그리고 그것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번에는 첫머리의 저 싯다르타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고, 776쪽의 이 책을 읽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