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윌슨 《지구의 정복자》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3
신화가 인류의 기원과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는 세계관과 그렇지 않다는 세계관을 서로 화해시킬 수 있을까? 솔직하게, 그리고 짧게 대답하자면, 아니다. 둘은 화해시킬 수 없다. 둘의 대립은 과학과 종교, 경험주의적 태도와 초자연적 존재를 믿는 태도의 차이를 정의한다.(17)
이것이 전제다.
호모 사피엔스를 이 수준으로 밀어붙인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늘어난 장기 기억, 특히 꺼내어 작업 기억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장기 기억과 단기간에 시나리오를 짜고 전략을 세우는 능력이 아프리카를 탈출하기 직전과 이후에 유럽을 비롯한 각지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정복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데에 동의한다. 복잡한 문화의 문턱까지 밀고 간 추진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집단 선택이었을 것이다. 서로의 의도를 읽고 협력하는 한편, 경쟁하는 집단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구성원들을 지닌 집단은 그것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집단보다 엄청난 이점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집단 구성원 사이의 경쟁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그 경쟁은 한 개인을 남보다 유리하게 만드는 형질의 자연 선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새 환경으로 진출하고 강력한 적수와 경쟁하는 종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집단 내의 단결과 협동이었다. 다시 말해 도덕, 지도자에 대한 복종, 종교적 열정, 전투 능력이 상상력 및 기억과 결합됨으로써 승자를 낳았다.(273)
여기서 결론이구나, 이걸 결론이라고 생각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끝에 이르러 다음 부분을 발견하고 밑줄을 그어 두며 생각했다.
'띠지에 「이기적 유전자」의 시대는 끝났다!'고 되어 있어서 진화론과 창조론 얘긴가 했더니 살짝 아니네?'
'이건 멋진 책이야. 일단 나의 100권에 넣어두기로 하자.'
나는 다른 가능성이 더 마음에 든다. 아마 외계 지적 생명체가 우리은하 어딘가에 살고 있고 발전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진화하는 자신들의 문명이 종교적 신앙, 이데올로기, 호전적인 국가 사이의 경쟁 때문에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문제는 파벌들이 어떠한 식으로 나뉘어 있든 모두의 협동을 통해서 합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거대한 해결책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이르렀다면, 그들은 다른 태양계를 개척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고향 행성에 머문 채 거기에서 이룰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들을 탐구하고 있을 것이다.(362~363)
빈약하긴 해도 그동안 조금씩 읽었던 내용, 혹은 나와 별 관련이 없어서 읽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들, 이것 저것 여러 분야를 분석한 내용이 지루하게 전개된 것들을 보며 몇 번이나 '이걸 읽어야 하나?' 회의감도 가졌지만 마침내 이 부분에 이르러 멋진 책이라는 걸 인정했다.
과학은 때로 과학자들에 의해 과장되거나 실생활 장면에서는 실망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가 의존할 수밖에 없고 지켜보아야 하고 지지해주지 않을 수 없는 학문이라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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