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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사문 광덕廣德과 엄장嚴莊

by 답설재 2022. 3. 13.

 

 

 

광덕과 엄장

 

광덕이 서방 극락으로 가다

 

문무왕 때 사문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란 이가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친하여 밤낮으로 약속했다. "먼저 서방 극락으로 가는 이는 마땅히 서로 알리세."

광덕은 분황 서리西里에 숨어 살면서 신 삼는 것은 직업으로 하여 처자를 데리고 살았으며, 엄장은 남악南岳에 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숲의 나무를 베어 불살라 경작했다.

어느 날 해 그림자는 붉은빛을 띠고 솔 그늘이 고요히 저물었는데, 창 밖에서 소리가 나면서 알렸다. "나는 이미 서쪽으로 가니 그대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오게."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서 보니, 구름 밖에서 하늘의 음악소리가 들리고 광명이 땅까지 뻗쳐 있었다. 이튿날 엄장은 광덕이 살던 곳을 찾아가 보니 광덕이 과연 죽어 있었다. 이에 그의 아내와 함께 광덕의 유해를 거두어 같이 장사를 지냈다. 장사를 마치자 엄장은 광덕의 아내에게 말했다. "남편이 죽었으니 나와 함께 사는 것이 어떠하오?" "좋습니다."

그는 드디어 그 집에 머물렀다. 밤에 잘 때 서로 관계하려고 하니, 그 부인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말했다. "스님께서 서방정토에 가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求魚緣木과 같습니다."

엄장은 놀라고 의아해서 물었다. "광덕도 이미 관계했는데, 내 또한 무엇을 꺼리겠소?“

광덕의 아내는 말했다. “남편은 나와 10여 년이나 함께 살았지만 하룻밤도 잠자리를 같이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서로 관계를 했겠습니까? 다만 밤마다 단정히 앉아 한결같은 소리로 아미타불만 불렀고, 혹은 십륙관十六觀(중생이 죽어 극락세계로 가기 위해 닦는 법)을 들었으며 미혹을 깨치고 진리를 달관함이 이미 이루어지자, 밝은 달이 창에 비치면 때때로 그 빛에 올라가서 가부좌로 앉았습니다. 정성이 이와 같았으니, 비록 서방정토에 가지 않으려 해도 그곳을 가지 않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대체 천 리를 가는 사람은 그 첫걸음으로써 알 수 있는 것인데, 지금 스님의 관觀은 동방으로 가는 것입니다. 서방으로 가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엄장은 부끄러워서 물러나왔다. 그 길로 원효법사의 처소에 가서 도제道諦를 간곡히 물었다. 원효는 정관법淨觀法(이미 생각의 더러움을 없애고, 깨끗한 몸으로 번뇌의 유혹을 끊는 假觀)을 만들어 그를 지도했다. 엄장은 이에 몸을 깨끗이 하고 전의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를 꾸짖고, 한마음으로 관을 닦았으므로 또한 서방정토로 가게 되었다. 정관법은 원효법사의 ‘본전’과 ‘해동고승전’ 안에 실려 있다.

그 부인은 즉 분황사의 종이니 대개 관음보살 십구응신十九應神(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관음보살의 19종의 모습, 크게는 33종으로 나눈다)의 하나였다. 광덕에게는 일찍이 노래가 있었는데 이렇다.

 

달님이시여 이제 서방에까지 가셔서

무량수불전에 일러다가 사뢰소서

다짐 깊으신 세존世尊께 우러러 두 손 모아

원왕생願往生(죽어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 싶다), 원왕생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소서

아으, 이 몸 남겨두고 사십팔대원大願을 이루실까 저어합니다

 

 

삼국유사에서 옮겼습니다.

이런 얘기를 읽으면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눈물겹습니다.

남녀의 일은 재미있을 수도 있고 아름다울 수도 있고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고 온갖 일이 다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친구 간에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는,

죽어, 먼길을 간다는 것이 주로 그렇습니다. 눈물겹습니다.

하기야 죽어서 이승 사람도 아닌 주제에 여기 어디쯤을 헤매거나 어슬렁거리고 다닌다면 그게 무슨 짓이겠습니까?

아무리 멀어도 일단 가긴 가야 하겠지요.

그래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이겠지요.

 

 

* 일연 《삼국유사》 솔출판사 1997, 338~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