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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크로노타입 - 종달새와 올빼미

by 답설재 2021. 11. 8.

아내는 일찍 자는 걸 좋아합니다.

일찍 자는 걸 좋아한다? 그건 아니었는데 나와 결혼해서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아서 새벽에 남몰래 일어나야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정을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 사정은 쓰지 않겠습니다.

 

단칸방 살림을 오래 했으니까 내가 불을 켜놓고 꼼지락거리거나 부스럭거리거나 들락날락할 때마다 당연히 저 인간도 좀 자면 좋겠구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나는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낮보다는 밤에 정신을 차릴 수 있어서 뭘 좀 읽어봐야 할 것이 있으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냥 뒀다가 밤에 읽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그러자니 아내 보기 미안해서 이렇게 선언해버렸습니다. "당신은 종달새야. 난 올빼미고."

 

그럼 이제 종달새는 어떻고 올빼미는 어떤지 전문가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리처드 와이즈먼 《나이트 스쿨 NIGHT SCHOOL》)

 

 

"나이트 스쿨" 표지의 올빼미

 

 

크로노타입은 주로 유전자로 결정됩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행동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하죠. 잠의 측면에서 보면, 극단적인 종달새형은 오후 10시쯤 잠자리에 들어 대략 오전 6시에 깨어나므로 자명종이 거의 필요 없고, 낮잠을 잘 필요가 없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극단적인 올빼미형은 대략 새벽 1시쯤 잠자리에 들어 오전 9시쯤 일어나므로 자명종을 맞춰놓는 경우가 많으며 낮잠을 즐깁니다.

일의 능률이 가장 크게 오르고 최상의 기분을 느끼는 때도 각각 다릅니다. 종달새형은 정오쯤에 가장 각성 상태가 있고, 오전 9시~오후 4시에 가장 행복감을 느낍니다. 반면에 올빼미형들은 오후 6시 무렵에 가장 생산적이고, 오후 1시~오후 10시 시이에 최상의 기분을 느낍니다.

크로노타입과 인성 간의 관련성을 둘러싼 수많은 논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종달새형은 내향적이고 논리적이며 신뢰할 만합니다. 반면에 올뺴미형은 좀 더 외향적이고 정서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쾌락주의적이고, 창의적이죠. 부정적 측면에서 올빼미형은 신뢰성이 떨어지고 이상심리 소유자일 수 있으며, 자기도취적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올빼미형은 평균적으로 종달새형보다 평생 동안 네 배나 많은 연애 상대를 갖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또 음식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종달새형은 잠에서 깨어 30분 이내에 아침 식사를 하는 경향이 강하고, 올빼미형은 자정의 향연을 훨씬 더 좋아하죠. 풍족한 저녁 식사를 자꾸 하다 보니, 불행히도 올빼미형들은 비만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로노타입은 학업성취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종달새형이 올빼미형보다 학점을 더 잘 받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두고 연구자들은 애초에 종달새형이 올빼미형보다 더 똑똑하기 때문이라 판단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채택하는 이른 수업 시간으로 인해 올빼미형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 교육 전문가들은 학생들의 크로노타입을 측정하여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극대화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 중 좀 더 알맞은 시간대에 수업과 시험 일정을 잡는 식으로 크로노타입을 활용하는 겁니다.

학교의 아이들과 학생들만이 크로노타입으로 인해 고통받는 건 아닙니다. (후략)

 

 

헉! 올빼미는 쾌락주의적이고 신뢰성이 떨어지고 이상심리 소유자일 수 있으며 자기도취적이라고? 이건 뭐......

게다가 종달새보다 네 배나 많은 이성을 상대한다? 하, 나 참......

이제 와서 나는 본래는 올빼미가 아니었다고 다시 선언하기도 그렇고 난감하게 되었네?

아내에게 이야기할까? 아무래도 뭐가 잘못된 것 같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앉아 있다가 당하는 것 아닐까?

"왠지 신뢰성이 없더라니..." "자기도취적이고 이상심리 소유자가 분명해!" "나보다 네 배나 많은 연애 상대를 가졌었겠지. 이제라도 족쳐서 자백을 받아내야겠군." "밤에 뭘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그만큼 얘기해도 듣지 않더니..." 어쩌고 저쩌고.....

그렇지만 이제 와서 올빼미형을 하지 않겠다는 건 받아들여지지 않겠지? 오십 년을 올빼미로 살았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왜 그러냐고 하겠지?

나도 그렇긴 하지. 올빼미가 좋아서 올빼미가 되려고 노력하며 살았는데 돌연 종달새가 될 수는 없지?

 

 

이게 전문가 얘기를 읽은 소감입니다.